햇살이 창문에 퍼져 들어오고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잠시
눈을 조그맣게 오므려 어는 세상인지 확인해 본다
이승이면 이불 킥을 하고 일어나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고
저승이면 이왕이면 이동욱 같은 저승이 가 사자로 마중 나와
이승의 기억을 지워준다는 망각의 차를 한잔 내어주면 좋겠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감사하고도 때론 야속한 기분
이다
나는 말기 신장 환자이다
특이한 케이스로 아무런 질병 없이 급성으로 발병되었다
세상이 무너지고 하늘이 노랗고 아이들은 어리고 남편은
철이 없고 하~아 숨이 턱까지 차올라 순간 아찔했다
날씨가 유난히 쨍했고 ᆢ끝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지는 풍경이 몹시 아름답던 어느 대학병원 진찰실 금테 안경 너머로 쭉 찢어진 날카로운 눈과 얼굴이 약간 울퉁불퉁하고 두꺼운 입술이 퉁명스럽기 그지없던 흰 가운이 정말 안 어울리고 찍찍 끌고 다니는 신발 소리까지 귀에 거슬리던 나의 담당의사 선생님
검사를 마치고 불쑥 나이보다 어려 보이십니다
저랑 동갑이신데 ᆢ하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순간 햇빛이 쨍했던 거 같았다
한 번도 친절한 적 없던 그 입술이 미소를 짓는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덮쳐왔다
그랬다 빈혈이 심했던 이유로 병원을 찾았다가
두 가지 병이 있다는 게 발견되었다
나에겐 언제나 불행과 불운이 세트로 선물 되었다
태어나서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마지막 순간에
마치 항상 꿈이 좌절되도록 인생플랜이 설계되어 있는 사람처럼 어쩜 그리도 시기적절하게 최고의 자리를 위한 문 앞에 서면 꿈꾸던 최고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어야 할
문 뒤에는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불행하나쯤은 견디고 다시 기어올라 올까 봐
불운도 함께 주셨다
물 좀 주소
내 살면서 세상에 이렇게 목이 말라서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1년 동안 목을 뚫어 관을 박고 피를 넣다 뺏다 거르고
그 후엔 팔에 동맥을 끌어내는 수술을 하고 일주일에 네 번씩
모나미 볼펜심 만한 바늘 두 개를 아래위로 꽂는다
바늘을 꽂을 때면 숨소리도 못지를 정도로 싹 기절하게
자지러졌다가 네다섯 시간을 누워 있다 일어난다
주사가 얼마나 아픈지 옆 침상에 계시는 아들도 못 알아
보시는 치매 할머니도 주사만 대면 살려주세요 한다
첫 시술이 있던 날 마취도 없이 목을 뚫는데 순간
흡사 티브이에서 본 사슴목장에 피를 빼내는 작업 같았다
이렇게 살아 뭐하나 싶을 때
빈혈이 심해서 피가 마르고 있었다 온몸에 경련이 나고
병원 내에서 응급실로 응급실에서 중환자 실로 하루 내
실려 다녔다
밤새 의사 선생님과 열 팩의 긴급 수혈을 했다
피가 굳지 않도록 내가 잠들지 않도록 젊은 의사 선생님과
밤새 얘깃거리가 떨어지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동트는 아침에서야 그 피 마르는 수혈이 끝났다
살았다 ᆢ
살고 나니 살고 싶어 졌고 수혈을 할 수 있게 헌혈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한마음이 들었다
그것도 잠깐 갑자기 많은 수혈을 한탓에 부작용으로
다시 중환자실로 응급행
그 기나긴 입원생활을 마치고 나니 평생의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의 입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일주일 많게는 4번 정도 병원에서 6시간 정도를
피를 걸러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
더군다나 커다란 난제는 물
크크크 ᆢ기가 막혀서 하루에 물을 3잔 마시고 수분이 있는 생과일과 채소 염분이 있는 음식 모든 잡곡 밀가루
우유 및 유제품 인스턴트 음식 음료 차 커피 건강즙
한약 건강식품을 금한대
이건 공기와 이슬만 마시고 살라는 이야기 아닌가
천사가 되는 연습이 게로구나
끝이 아닌 시작
의사 선생님 은 정말 덤덤히 차분하게 두터운 입술을
서서히 움직이면서 말을 꺼냈다
단정 짓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계시다가는 3년을 못 넘기실 거예요
말기 신장으로 삼퍼 센트의 신장을 가지고 사셔야 하고
이제 는 약 없이 스스로 대소변을 보시기 가 어렵고
계속해서 합병증이 생길 거라고
신장 이식을 기다려도 짧게는 오 년 길게는 십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살고 싶지 않았다
몇 날 며칠 땅굴을 파고 들어앉아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시간을 즐겼다
문득 드라마에서 본 버킷리스트가 생각났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는 리스트를
만드는 것
첫 번째 해보고 싶은 일 요리사 이렇게 적었다
나는 헤어디자이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때는 악기 전공 준비를 했었다
그때도 학력고사를 마치고 실기시험을 보고 합격의
기쁨을 채 누리기 도전에 평생 나의 친구 첫 번째 불행 불운
세트가 찾아왔다
갑자기 가세가 기우는 탓에 대학을 갈 수 없게 되고
내 악기는 팔아서 월세방 보증금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집안의 가장이 되어 돈을 벌어야 했다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미용사 일을 배우게 되고
그 일을 천직이라 여기면서 이십여 년간 밥을 버는 일이 되어주었다
종갓집이었던 우리 집엔 항상 음식 냄새가 넘쳤고
맛 또한 훌륭했다
요리를 해본 적은 없으나 잘 먹고 자란 탓에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그래서 버킷리스트의 일 번이 요리사였을 것이다
올리브티브이라는 요리 채널에서
마스터셰프 광고를 보고 지원서를 내게 된다
날짜를 잘못 보고 지원서를 너무 늦게 내는 바람에 포기했는데 추가 지원을 받아서 면접을 보게 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세상 신나게 달려갔는데 3800명의 지원자가 있고 그중에 서울에서 10명 부산 예선에서 10명 뽑는다는 얘기에
안 되겠다 싶었다
그냥 투병생활이나 해야겠다 했는데 합격통지가 오고
그 길로 삼개월간의 합숙과 촬영을 했다
물론 여기서 불행과 불운이 함께 했다
투병 시기가 다가와서 병원에 입원하고 각종 검사와
수술을 해야 했는데 나는 시기를 미루고 마스터셰프 코리아에 참여했다
미친 건지 무모한 건지 그냥 그러고 싶었다
삼 개월의 합숙은 정말 나에게 평생 못해 본일 못 가본 곳
못 먹어본 것 못 사귀어 본 친구를 선물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요리 사거나 요리 관련 일들을
하시는 분들이었는데 정말 색다른 경험이였습니디
내가 환자라는 것도 잊은 채 그 경험으로 나는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의 첫 번째 소원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끝에서 갑자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신과의 전쟁
나는 천주교 신자 모니카입니다
병원에 입원을 안 하고 즐긴 즐거운 경험에 대가는 무자비했습니다
힘든 요리대결과 촬영 일정에 전국을 누빈 나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던 터라 뭐 더 말할 것도 없이
몸은 부종으로 120 키로가 넘었고 칼슘이 빠져나가 골다공증에 관절염으로 지체장애로 다리를 절게 되고 장애판정까지 받을 지경 불행이 와 불운 이를 친구로돈
탓에 뭐 그런 일은 이미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누워 있는데 시어머니가 문병을
오셔서 소름 돋게 찬서리 같은 숨을 내뿜으면서 신장 투석하게 돼서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하길래 하마터면 어머니를
좋아할 뻔했습니다
평생 단 한 번도 따뜻한 적 없던 분이 어쩐 일로 이렇게 깊이
탄식을 해주시나 했더니 병든 아내 수발하게 된 아들 걱정을 하시는 거였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성당을 잘 안 가고 기도를 소홀히 해서
병이 걸렸다는 이야기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에 응급상황에 심폐소생술 금지하라는 신청을 하라고
그리고 행여라도 아들 하나 있는데 괜히 신장 이식해달라고 그런 생각 하지도 말라면서 신장투석을 한다고 바로 죽는 것도 아닌데 두루 하고 싶은 말을 다정리 해 오신 듯했다
덕분에 갑자기 다시 살고 싶어 졌다
신을 크게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마음과 의지가 약할 때는
마음껏 매달려볼 수는 있었는데 같은 종교를 가진 시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종교마저 정이 떨어졌다
불치병 걸린 병상의 아픈 며느리에게 기도 안 해서 병 걸렸다고 끊임없이 잔소리 폭탄을 마구 터트리실 일인가 말이다
살면서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게 상처를 주셨는데 말이죠
시어머니와 함께 살던 시간 동안은 불행이 와 불운이 도
찾아오진 못했었지요
불행과 불운이 넘겨다볼 수도 없는 넘사벽이었으니까요
신에게 묻고 또 묻습니다
저는 이미 당신이 주신 가시덩굴을 빠져나왔습니다
또 다른 것이 남아 있는지요
그저 지금의 처지라도 달게 받고 아이가 커서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만 이라도 라고 핑계 김에 조금 더 숨 쉬고
싶습니다
안된다고 하시면 지금부터 감히 전쟁입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신장투석으로
음식을 제대로 못 먹고 잠들면 위험해서 깊이 잠 못 들 때도
있으며 부종으로 발이 부어 신발이 안 맞아 밖을 못 나가고
얼굴이 달덩이처럼 커져서 식구도 못 알아보게 생겨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나를 위한 요리를 따로 해 먹어야 하는 것도 힘들지만
대부분 연세 드신 분들은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들도
많으셔서 그리고 이병이 무서운 게 정신을 파괴합니다
하루 건너 병원을 가야 하니 어디 여행을 갈 수 있나
음식을 잘못 먹으니 모임을 갈 수 있나 사람들에게 그래서 이렇다 얘기하면 또 세상 딱하게 바라보니 전염병도 아닌데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일 년 열두 달 주삿바늘을 꽂으니
팔은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겨 한여름 폭염에도 땀에 칭칭 긴팔을 입어야 합니다
또 한 번 뭔가 모르게 억울하고 분해서 가슴을 칩니다
처음 요리사가 되었을 때 바로 환자가 되었으니 이런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환자도 사람이니까 어떤 방식으로 던 음식을 먹어야
할 테지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메티컬 셰프 가 있어야 하겠다고 영양소가 들어간 건강한
환자식도 좋겠지만
몸이 괴로운 환자에게 입에 맞지 않는 건강식을 권한다는 것도 참 못할 노릇 아닌가 생각돼서요
옛말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라는 말이 있죠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사람답게 먹 자이거지요
설암으로 혀 의미각을 잃은 분은 음식의 욕구 충족이 안돼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토로하시더라고요
그만큼 환자한테는 먹는 일도 너무 중요 한데 정작 의사 선생님들께서는 섭생과 식이에 대해 디테일하게
처방해주실 수는 없는터라 환자와 가족들은 지표가 되어줄
만한 데이터 베이스가 없더라는 이야기지요
사실 암환자 전문 식단 당뇨 전문 식단들을 운영하는 곳도
병원식과 다르지 않고 고가의 비용에 장기 지속적으로
주문해서 드시기 어려운 실정이지요
그리고 식사도 신장병인데 당뇨 가있으신 분 신장병인데 암에 걸리신 분 다양하게 섭취방법도 달라야 하는데
너무 광범위하니 무척 까다롭고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랜 역학조사와 임상실험이 곁들여져야
하는 일이므로 저처럼 환자인 사람의 남은 시간이
실험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만들고 먹고 기록하면서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임상실험자가 많이 나와서
미래의 환자들의 섭생 식이를 돕고 적어도 사는 동안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처럼은 살지 않고 남은 시간
먹는 즐거움이라도 즐길 수 있고 좀 더 나아가서는
잘 먹고 치료와 함께 좀 더 편안한 여생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남은 시간 동안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내가 무엇을잘못 먹었나 잘못된 식습관을 되짚어 돌아가보는
거꾸로 가는 밥상 을통해 환자들이 건강하게 잘
먹을 수 있는 질좋은 식사를 연구하는 메디컬 셰프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정리하면서 주문을 외웁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
내일 아침 만약에 눈을 뜬다면 나는 또 나로서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낼 것입니다
만약에 눈을 뜨지 못한다면 오늘 밤이 기록들로 아팠던 기억들을 소멸하려 합니다
아팠던 기억들은 여기에 두고 ᆢ그저 왔다감에 한판 거나하게 잘 마시고 잘 놀면 잘살았고 행복했다고 흔적 남기고 싶습니다
박소진 by밥티스트
#나와5년의투병기를함께해준H그녀에게감사
#오랫동안 요리하고 싶다
#메디컬 셰프
#신장투석식
#빈혈 환자식
#먹는 게 젤 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