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네이비 소파와 작은 원형 테이블, 그리고 할머니

by 모모씨

아빠가 정년퇴직한 지 반년이 살짝 넘은 시기였다. 엄마는 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월세가 아니라서 그런지 아빠는 이 사무실을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퇴직하자마자 컴퓨터를 구입해서 엄마의 책상 옆에 나란히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다. 딱히 컴퓨터로 대단한 것을 하는 건 없었지만, 가끔 한글 파일을 확인하곤 했다. 사무실에는 집에 있는 텔레비전보다 훨씬 큰 텔레비전이 구비되었다. 안마의자에 앉아 골프 채널을 보는 것이 아빠의 하루 일과였다. 독서광인 아빠답게 책장을 사고 나서 집에 있던 책들을 가져가 꽉 채우기도 했다. 엄마와 같이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저녁에 같이 퇴근했다. 퇴직한 사람치고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사무실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물론 가끔 여전히 일 관련해서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도 있어서 반백수 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아빠의 전 직장은 법원이었다. 어렸을 때 아빠가 법원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꽤 멋지다고 생각해 부모 직업란에 자신 있게 적어내곤 했었다. 내가 10살쯤, 외할머니가 있는 엄마의 고향인 강원도로 이사를 했다. 아빠는 일부러 직장을 강원도 쪽으로 발령받았다. 직장 특성상 몇 년마다 위치를 옮겨야 하니 홀로 경기도에서 근무할 때도 있었다. 그럼 나와 동생은 가끔 주말에 경기도로 엄마 차를 타고 가서 차가 몇 대 없는 주말의 넓은 법원 주차장에서 킥보드를 타며 놀곤 했다. 원룸 같은 아빠의 숙소도 구경하며 컵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 그리고 우린 강원도에 정착했다.


4월 21일.

엄마는 아빠의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고 말해주었다. 아빠의 옛 동료 중 한 분이 법무사를 이사하는 바람에 필요 없는 깨끗한 네이비 소파를 엄마 사무실로 옮겨왔다. 나름 멋들어진 1인 소파가 세 개나 생겼다. 엄마는 나에게 소파에 맞는 작은 원형 테이블을 찾아달라고 전화했다. 통화를 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테이블을 구매했다는 엄마의 카톡이 왔다. 갈색 다리의 세라믹 원형 테이블이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커피숍에서 쓸 것만 같은 낮은 테이블이었다. 아마 소파가 생기자마자 엄마와 아빠는 가구점을 돌아다니며 테이블을 찾았을 것이다. 아빠는 성격이 급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해 안달 나는 편이었다. 이 특성은 대부분 무언가를 구매할 때 발휘되는 탓에 엄마는 가끔 내게 이런 모습이 보이면 아빠를 거론하며 왜 이렇게 급하냐고 나무란다. 하지만 엄마의 만류에도, 아빠든 나든 결국에는 바로 행동으로 저질러 버리고 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후회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번 테이블은 저렴하게 잘 구매한 것 같다. 아빠의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은 덤이다.


며칠 전, 엄마와 작은 고모가 통화하는 것을 의도치 않게 엿들었다. 술을 마시고 전화를 건 작은 고모는 우는 것인지 쿨쩍거리는 소리가 방 밖 너머 내게까지 들려왔다. 병원에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병원의 사정상 불가능해 엄마가 만류한 모양이다. 아빠는 위로 형이 둘, 누나가 하나, 여동생이 하나 있다. 각자 뿔뿔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고, 명절 때도 다 같이 모이지 않은지 꽤 되어 그다지 자주 보지는 않는 편이다. 가끔 모일 때는 할머니를 보러 요양원에 갈 때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는 우리와 함께 살았다. 우리가 10살 때 이사를 가며 할머니와 헤어졌고, 그즈음 할머니에게 치매가 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김치냉장고의 버튼을 끈지도 모른 채 김치를 잔뜩 보관하고 있었다. 내가 중학생 때쯤 서울에 있는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우리와 다시 살기 시작했다. 예상했겠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특히나 할머니의 모든 케어는 거의 엄마에게 맡겨졌고, 몇 년이 지나 더 이상 엄마가 할머니를 챙기기에는 버거운 수준까지 올라갔다. 작은 아빠의 집으로 간 할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일 년에 한두 번 아빠의 형제들은 가끔 시간을 맞춰 제천 요양원에서 만나곤 한다. 제천으로 가기 전, 아빠는 나에게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이번엔 따라가야 하지 않겠냐며 채근하곤 했다. 나이가 있으시니 이번엔 진짜 돌아가실지 몰라. 하지만 몇 년째 계속 같은 말을 듣기엔 할머니는 90세가 넘도록 장수하고 계신다. 이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기에도 머쓱한 수준이다. 고모는 엄마와의 통화 중에 ‘이러다 엄마(그러니까 나에게 할머니)보다 오빠가 먼저 가는 거 아니냐’며 말을 건넸다. 엄마도 고모의 말에 ‘이러다 정말 애들 결혼할 때도 내가 혼자 보낼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내 결혼식에 아빠 없이 혼자 걸어가는 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딱히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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