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퇴원.
전날 전부 마무리했던 집 청소를 이른 오전에 다시 한번 더 했다. 깨끗해 보이는 바닥이지만 청소기를 돌리고, 하루 동안 사용한 몇 되지 않는 그릇들도 식기세척기에 돌리고, 건조기에 넣어놓은 옷들을 꺼내 정리했다. 특별히 그저께 구입한 청소 밀대로 아빠 방 침대 밑에 쌓인 먼지들을 닦았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꿉꿉한 공기를 환기시켰다. 날씨가 좋다.
오후에 아빠와 엄마가 7일간의 짐들과 함께 집에 도착했다. 기운 없어 보이는 아빠와 짐들을 빠르게 풀며 아빠의 몸 상태를 묻는 엄마.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애매한 포지션으로 서서 혹시나 짐 정리에 내 손이 필요할까 어색하게 서있었다.
밤에 엄마에게서 병원에서의 생활을 짧게 들었다. "남자 환자들뿐인 병실이라 어찌나 방구들을 그렇게 뀌어대는지."와 같은 엄마의 푸념부터 시작해서, 끝없이 말싸움을 해대는 바로 옆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 하루 종일 들리는 코골이 소리까지. 환자와 보호자가 편히 쉬기에는 정말 힘든 병실이었다. 조직 검사 후에는 열이 오르면 안 된다. 하지만 조직 검사를 끝내고 밤에 취침 전에 계속해서 아빠가 열이 나는 탓에 간호사들이 긴장 상태였다고 했다. 변도 잘 나와야 하는데, 갑자기 시작된 변비로 인해 고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간호사들은 병실 안의 환자들에게 변비가 있는지 항상 체크하고, 먹는 변비약을 주었다. 일반인은 상관없지만 간암 환자들에게 변비란 정말 위험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퇴원하는 길에 왜인지 아빠는 고집을 부려 본인이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결국 아빠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면 서울에서 집까지 올 수 있다. 하지만 이날은 어린이날이 낀 토요일 오전이었다. 차가 정말 무지막지하게 막혀 엑셀을 뗐다 밟았다를 자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행동이 아빠에게 무리가 간 것인지, 운전하는 아빠가 조금씩 아파했다. 걱정이 된 엄마는 어쩔 줄 몰라했고, 구급차가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휴게소로 들어가는 차들도 줄지은 상태였다. 하지만 어찌어찌 휴게소로 들어간 엄마와 아빠는 앉을자리를 찾아보았지만, 남는 자리를 한 군데도 찾을 수 없었다. 멀리 보이는 노약자와 어린이가 앉을 수 있는 좌석 같은 소파가 하나 있었고, 엄마는 아빠를 데리고 소파에 앉았다고 했다. 점심때였다. 테이블도 있던 자리여서 음식 섭취가 가능했다. 다행히 아빠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고, 식욕도 올라왔는지 우동을 주문했다. 엄마는 아빠가 혹시나 밥을 먹고 싶어 할까 봐 비빔밥을 주문했다.(너무 짜서 결국엔 엄마도 많이 못 먹었다고 한다.) 우동을 남김없이 다 먹은 아빠를 보며, 엄마는 그래도 아빠의 식욕이 멀쩡한 걸 보아 괜찮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식사를 끝내고 아빠는 평소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주문했다. 커피를 사가지고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는 다시 자연히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 집 강아지 두 마리 중 한 마리(첫째)는 엄마 침대 옆에서 자던 습관을 가지고 있다. 갑작스럽게 6일 정도를 외롭게 거실에서 잠을 자던(아무리 내 방으로 불러도 오지 않았다.) 첫째는 오랜만에 일찍이 익숙하게 엄마 침대 옆 자기 자리에 누웠다. 나를 제외하곤 오랜만에 전부 이른 시간에 잠이 든 날이었다. 이제는 병원의 소음은 사라진 채, 사람과 강아지의 숨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