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는 나의 조그만 상상이다.
1층에서 다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내가 아빠를 보고 가길 바랐나 보다. 내가 병원에 가는 날마다 공교롭게도 조직 검사를 했던 날이라 아빠를 보고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애매하게 거절했지만, 엄마는 결국 자신의 손목에 단단하게 붙여진 출입증을 조심히 떼어내어 내 손목에 붙이는 것을 성공했다.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손목 띠에 있는 큐알코드를 확인하는 전자동 출입구가 있었고, 지키는 사람이 한 명씩 있었다. 나는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처럼 긴장이 되었다. 누군가 문제가 생겼는지, 출입구에 걸려 살짝 시선이 분산되었을 때, ‘지금이다!’하며 빠르게, 하지만 짐짓 여유 있는 척 자연스레 병동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아뿔싸. 가까이 다가가니 해결이 됐는지 사람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제 와서 황급히 뒤로 가면 그게 더 이상하게 보일 터.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자연스러운 척, 많이 지나가본 척, 손목을 인식기 앞에 갖다 대니 삐-하는 알림음과 문이 열렸다. 다시 자연스레 걸어간다. 덩치 큰 남자가 엘리베이터 앞에 또 서있다. 아마 안내해 주시는 분인 것 같다. 가드가 왼쪽 엘리베이터 쪽에 서있어서 오른쪽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짝수층 엘리베이터였다. 아. 나는 9층을 가야 하는데. 생각이 들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옆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고 말해주는 엄마와의 통화를 하며 난 자연스레 통화 때문인 척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반대쪽 엘리베이터 중 제일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약간 더 긴장이 될 무렵, 안내하는 남자 바로 옆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는 황급히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갔다. 휴. 이게 뭐라고. 그리고 엄마에게 통화를 걸어 마치 아바타가 된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려서 오른쪽에 한 번 더 큐알코드를 찍으면 병실 복도로 들어가는 유리문이 열린다. 그리고 왼쪽. 간호사들이 있는 곳을 지나쳐서 가야 한다. 처음 보는 나를 알아보는 것 아닐까, 염려스러웠지만 간호사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기에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다시 자연스레, 하지만 고개는 살짝 숙이고 열심히 통화하는 척. 다 왔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중간 자리. 엄마와의 통화를 끊고, 커튼을 젖히자, 아빠가 누워있다. 슬쩍 눈을 뜬 아빠와 눈이 마주친다.
“괜찮으세요?”
“응.”
아빠는 힘없는 목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머쓱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는 나는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어떻게 왔어?”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빠였다. 한 번 더 찔렸다.
“엄마가 이거 줘가지고..”
아빠에게 내 손목의 출입증을 숨기듯 보여줬다. 잠시간의 정적.
“내려가.”
“네.. 괜찮으시죠?”
“응.”
부녀 사이, 걱정 어린 상냥하고 따뜻한 말들이 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 이상 할 것도 없던 나는 아빠와 몇 마디 주고받지도 못하고 다시 후다닥 내려왔다. 나올 때는 훨씬 자연스럽고, 심지어는 편한 마음으로 내려왔다. 생각보다 빠르게 내려왔는지 엄마가 깜짝 놀랐다. 그럴만했다. 엄마와 다시 지하 1층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남은 일정을 위해 병원에서 나왔다.
여기까지가 나의 상상이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