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지하철

먹사니즘 속 짧은 명상

by 모모씨


먹고살기 위해 오늘도 만원 지하철을 탄다 ©unsplash image







몸을 돌릴 수도 없이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저마다의 시선이 핸드폰 액정화면에 꽂혀 '분주한 고요'가 흐르는 출근 지하철 안.

"아 뭐 하는 겁니까-!"

정적을 깨고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긴 지하철 타자는 거지~!"

"적당히 좀 미시라고요"

"안으로 좀 들어가야지, 입구를 막고 서서 말이 많아"

뭐 이런 실랑이다.

힘으로 누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평생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만원지하철의 인간 쓰나미에 떠밀려 쓸려가다 팔꿈치에 눈두덩을 맞아도 조용히, 꾹- 참고 지나가는데, 덩치가 산만한 두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일말의 거침도 없었다.

사람들은 눈으론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둘의 대화가 적잖이 신경이 쓰인다.

더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도 지나치게 밀어대는 사람도 안쪽으로 공간이 충분한데도 자기가 정한 자리에 서서 요지부동인 사람도 모두가 나름의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출근 지하철 안에선 생면부지 낯선 사람들이, 세상 가까운 거리(약 10~15cm)에서 서로를 강제로 마주 보게 된다. 어디 앞쪽의 얼굴뿐이랴. 등 쪽으로 내 뒤에 선 사람은 어찌나 바짝 붙어 섰는지 그 사람 배의 굴곡이 나의 등과 허리를 따라 온전히 느껴질 정도다. 고개를 슬쩍 틀어 곁눈질로 나와 같은 성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니, 다행히 나와 같다. 성별이 같아 성적 수치심은 면했지만, 그 사람은 자신이 들여다보고 있는 핸드폰으로 자꾸만 내 뒷머리칼을 건드렸다. 성적 수치심보다는 수위가 낮은 머리칼의 불편함이 지속적으로 심기를 건드린다. 이쯤 되면 '강력한 한 방 스트레이트'와 '자잘한 잽잽잽-',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치명적인 위해가 될 수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오른쪽에 선 사람은 은근히 나에게 몸을 기대 의지한 채로 핸드폰 화면을 연신 밀어 올리고 있다. 그이의 체중을 일부 나눠 감당하기 위해 아침밥도 거른 나의 다리에는 힘이 더 들어가야 한다. 앞뒤좌우 모두 신경이 곤두서는 상황이다. 그럴 땐 차라리 질끈 눈을 감고 이 아수라 같은 현실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動中.

분주하고 시끄러운 현실 속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고요를 눈앞에 불러다 놓을 수 있다는 점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다행히 내가 만원 지하철을 타는 구간은 그리 길지 않다. 환승역에 지하철이 들어서고 문이 열린다. 모두가 경기장으로 돌진하는 황소들처럼 하차를 결심하고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는 순간. 문이 열리고 내가 하차를 위해 몸을 빼려는데 나에게 몸을 기대 핸드폰 화면을 밀어 올리고 있던 내 오른쪽 사람의 핸드폰이 기우는 게 느껴졌다. 바로 앞이 문이어서 그 사람이 폰을 놓치기라도 하면 승장장과 열차 사이의 틈으로 핸드폰이 빠져 선로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을 떼려는 그 짧은 찰나 그런 생각이 다 펼쳐진다는 게 어찌나 경이로운지. 어쨌든 나는 어깨를 지하철 밖으로 빼려다 말고, 반 박자쯤 몸을 다시 원위치시켰다. 그러는 사이 그 사람은 다행히 핸드폰을 잘 움켜쥐었다. '됐다. 나는 이제 튀어 나간다.'


지하철 환승통로를 잰걸음으로 걸으며 그 사람은 내가 자기의 핸드폰 걱정을 하느라 의지를 움직였다는 이 상황을 알기나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치한 공명심이 고개를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들자, 같은 방식으로 내가 알지도 못하게 남들에게 받은 도움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도 따라 올라왔다. 알든 모르든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도우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로 연결된 존재들이라는 거다. 잠시 마음이 몽글몽글 뭉클해졌다.


뭉클한 뿌듯함도 잠시, 환승해 갈아탄 지하철 안에는 또 다른 '기침가래 빌런'이 있었고, 나는 조금 전 혼자만의 뭉클한 감정은 하얗게 지워버린 채 부글부글 끓다, 한 인간의 기이함에 혼자서 부끄럽다가, 또다시 알 수 없는 무엇에 감사하다가..

그렇게 우당탕탕 사무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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