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에 가기로 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신거죠?”
“아, 네!”
순간 멈칫했다. 아! 정신과구나.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한 전화였다. 몇년 간 스스로에게 품었던 의심을 확신으로 결정지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남편을 붙들고 정신과를 가봐야겠다고 엉엉 울며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7-8년전쯤 되었을까. 뭐가 먼저였는지 모르겠으나, 우울해서 폭식했고 폭식을 해서 우울했다. 불안으로 멈출 수 없는 운동은 날 지치게 했고, 그렇게 지쳐 잠들어도 2시간이면 깨는 수면 장애가 원인이었다. 절실하게 구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난 결국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심지어 오늘처럼 예약 전화조차 하지 못했으며, 병원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분명 도움이 필요했으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이번엔 다른 이유였으나 이렇게나 가벼운 마음으로 예약 전화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땐 죽을 것 같았고, 이번엔 아니였다.
"월요일 9시 20분이에요. 전날 문자가 갈텐데 월요일 예약이라 토요일에 갈거예요. 그러니까 까먹지 않게 꼭 메모해두시고 오세요. 월요일 9시 20분입니다."
예약 전화 한통으로 이미 진단을 받은 것 같았다. 다행인건 전화를 끊으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는거다. 문제를 인지해 병원을 가기로 했지만 그다지 심각하지만도 않았다. 정신의학과라는 사실도 인지 못할만큼.
나에게 병원을 간다는건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한창 비염으로 고생할때, 양쪽 코가 꽉 막혀버려 숨쉴때마다 귀에 압이 올랐다. 코를 손가락으로 꽉잡고, 코로 숨을 내 뱉는 그 느낌. 요가를 하러 가서 코로 숨을 쉬는데,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귀구멍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살려줘. 곧장 요가원에서 뛰쳐 나와 눈에 보이는 아무 병원으로 향했다. ( 운 좋게 그곳은 한의원이었고, 놀랍게도 비염이 완치되었다. 한의원 맹신자 )
코로나 후유증으로 자꾸 호흡이 힘들었다. 숨쉬는게 너무 힘들어 이대로 죽는게 아닐까란 생각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폐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렇게 일상에서 위협을 느껴야만 미루지 않고,제 발로,즉시- 가는 곳이 병원이란 곳이었다. 감기 정도는 자연치유가 가능했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 괜찮아지곤했다. 하지만 이번엔 생명의 위협 같은 이유가 아니였다. 분명 나는 (나름)잘- 살고 있었다.
살면서 꼼꼼하다라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덜렁대는 그런 것들이 그저 성격이라 생각했다. 성격으로 받아 들이는 순간 대부분의 것들은 편해진다.
처음 이 병(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을 의심한건 3년쯤 되었을까. 덤범대고 수시로 까먹고 잊어 먹고 잃어버리고. 이런 실수가 잦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이지 않나.
“나 진짜 ADHD인가봐.”
ADHD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가 여기저기에서 노출되면서 증상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날 표현하는 말들이었다. 이미 ADHD는 자연스레 스며든 나의 친구였으나, 수시로 그를 거부하고, 인정하고를 반복했다. 수십번의 의심과 내 안의 돌팔이 의사가 자가진단으로 내린 확신이 반복됨에도 병원에 가볼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증상이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하잖아.
(나) 근데 나 ADHD 아니면 어쩌냐? 그것도 문제 아냐?
(남편) 그럴 일은 1도 없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해도 돼.
(나) 나 참! 쳇
(남편) 네가 몇년간 깨먹은 접시랑 컵만 해도 몇개냐. 맞다니까.
(나) 야. 내가 그거때메 병원을 가겠다는게 아니잖아.
내가 스스로 ADHD라는걸 의심하고 확신하는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타인이 “넌 ADHD가 확실해. 맞는 것 같아.” 라는 식으로 말하면 괜시리 불쾌했다. 특히 남편. 쳇. 네가 뭔데! 함께 나의 ADHD 여부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도 그가 확신하는 순간 거부감이 확 들곤 했다. 그리고 욱함을 발사했다.
-컵깨고 물 쏟으면 다 ADHD게? 너는 주방일을 안하잖아. 이게 다 좁아터진 이 주방 때문이야!
-맨날 꼼꼼한 척 하는 너도 결정적인 실수를 하잖아! 예를 들면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 선반에 짐 가방을 놓고 내린다던지 하는 일. 아무리 덤벙대는 나라도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실수는 하지 않았어!
-누구나 집중 못하고 옆길로 새는 건 있을 수 있는거 아냐? 시험 기간에 청소하는건 국룰 아니냐!
이렇게 의심과 확신, 거부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것을 그만하기로 한건,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분명 나는 나름(강조) 잘 살고 있었으나, 조금 더 잘 살고 싶어졌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고치면 되고, ADHD가 문제라면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분명한건, 깨먹은 컵이나 접시이 아니었다.
그리고 요즘은 잘 안 깨먹는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