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일출을 두 번이나 봤어요

용기 있는 나, Blind창

by 모모제인


2023년 0시 0분의 지구를

우주에서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해본 적 있나요?


저는 파도타기 같아 보일 것 같아요.

그 있잖아요.

야구장 치어리더 응원석부터 시작해서 관중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앉으면서 야구장 관중석을 한 바퀴 뺑 돌아오는 그거 말이에요. 0시 0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지구를 빙 돌려 자리 잡은 타임존별로 파바방! 퍼져나가는 모습. 어쩐지 비슷할 것 같지 않나요.


저는 2023년 0시 0분에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에서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불꽃놀이를 구경했는데요. 그 극적인 순간에 전 엉뚱하게도 우주에서 보면 난 어디쯤 파도에 타고 있을지 상상하고 있었답니다.

2023년 되기 5분 전, 기대에 찬 사람들
2023년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


2023년 새해는 저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에요. 무슨 말이냐면요. 더 이상은 최근 몇 년간 해왔던 대로 관성적으로, 보통의 회사원으로만은 살아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3개월 전에 휴직을 했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고 난 이후 마음의 후폭풍은 이제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요. 격동의 모래바람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니 그 아래 깊숙이 파묻혀 있던 어떤 욕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익숙하지 않아도,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표현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30대 때는 일 말고 딴짓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걸 꺼내어 살펴보고 다시 넣어둘 수 있을 정도로 얕은 곳에 두었어요. 하지만 안정적이고 고소득이기까지 한 직장인으로 15년을 살다 보니 점점 새로운 무언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그저 부족함 없는 일상과 적령기를 딱 맞춘 결혼, 육아, 직장 세 개의 톱니바퀴가 각각 제자리에서 예정된 수순대로 착착 굴러갈 뿐이었어요. 이렇게 직장은 내 인생의 핵심 부품이 되어갔어요. 이렇게 최적의 조합으로 시스템화되고 나니 굳이 새로운 선택을 할 이유가 없어지더군요.


그래서 저는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한 이후부터는 딱히 새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녔고, 그 안에서 인정을 받았고, 한마디로 살만했으니까요. 점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주 조금씩 뜨거워져 가는 냄비 안에서 익혀져가고 있는 개구리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운전을 즐기는 편입니다. 하지만 2차선 고속도로는 예외입니다. 제 차는 승합차라 시속 110km 속도제한이 걸려 있거든요. 1차선은 속도를 내는 승용차들이, 2차선에는 저속 화물차들이 가득하잖아요. 2차선으로 달리기엔 답답하고, 1차선으로 달리기엔 속도를 낼 수 없죠.


회사생활도 제 차로 2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는 거랑 비슷해요. 1차선으로 달리면서 추월당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정해진 월급만 받으면서 천천히 가는 것도 싫거든요.


편하게 느끼는 속도가 저마다 다를 뿐이지 더 빠르거나 더 느린 속도로 달리는 차는 항상 있잖아요. 근데 언제부턴가 갓길이 없어져 버리더라고요. 뒤에 빠르게 쫓아오는 차가, 너무 느리게 달리는 차가 아무리 불편해도 불편한 채로 그렇게 달려갈 수밖에 없는 느낌이었어요. 마음의 신호는 결국 몸의 신호로 번졌고. 어리석은 인간은 건강을 잃어야만 오래된 마음의 신호를 기억해내려 애쓰기 시작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고요.


내가 휴직을 하게 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난 적응을 못하고 튕겨져 나온 루저일 뿐인 거니까. 15년 직장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내공과 경험이 그렇게 끝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직장생활에서 느꼈던 불편감이 어떤 계기로 인해 작년에 최고조에 달했던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올해는 그동안 깊은 곳 어딘가에 묻혀서 잊혀 가던 내 관심사를 꺼내어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40대를 맞이하면서 잊고 지내던 호기심을 되찾고 싶어요.



정동진 새해맞이 행사를 구경하다가 강원도 지역방송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새해맞이 현장에 나온 시민의 희망찬 목소리를 들려주는 거였겠죠. 갑자기 새해 소원이 뭐냐고 묻는데 대답을 못했어요. 휴직하고 3개월 동안 비로소 들여다보게 된 내 마음을 도저히 한 마디로 표현을 못하겠는 거예요. "올해 좀 일이 부침이 많았어서 올해는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라고 뻔하디 뻔한 대답을 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 거예요. 휴.. 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하고 나와서 15년 직장생활을, 그리고 39년 내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 뭐 이렇게까지 얘기할 수는 도저히 없었죠. 창피할 정도로 동문서답으로 얼버무리고 말았어요. 인터뷰 끝내고 나니 너무 쪽팔리더라구요. 내 인생 첫 TV 출연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토록 간절한 새해 염원을 한마디도 말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게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여기에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2차선이 아니라 4차선 고속도로에서 달리고 싶어요. 제 속도로 가도 다른 차에게 눈치 보이지 않고, 주변 풍경도 간간히 쳐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잖아요. 그러면 목적지로 가는 길이 좀 더 자유로울 것 같아요.




적고 보니 아직도 조금 추상적인 느낌이네요.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에서 은유작가가 고통스러울수록 더 구체화해보라고 했으니까 좀 더 들어가 볼게요.


올해는 그동안 연락 끊긴 친구들과 좀 더 연락을 자주 할 거예요. 대학을 이쪽으로 오면서 초중고 친구들이랑 거의 연이 끊어지다시피 했어요. 결혼하고 다들 애 낳고 키우느라 살기 바빴죠. 남편은 이쪽에서 쭉 같은 지역에서 커온 불알친구들이 많은데 그게 항상 부러웠어요. 부럽다 못해 나는 친구가 없는 사람 같이 보일까 봐 열등감이 들었어요. 올해는 연락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고 소중한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했어요. 마음먹는 데까지 오래 걸렸을 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모두들 반갑게 인사해줬고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보려고 해요.


특별한 날에는 나와 우리 가족들이 기억에 남는 추억을 더 많이 남길 거예요. 한 동안은 해돋이를 보러 간 적도 없고, 제야의 종소리도 안 듣고 잠들어 버렸거든요. 인위적으로 정한 시작과 끝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렇게 사는 거 참 재미없는 인생인 것 같아요. 남들 다 하는 거 안 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고 자만했는데 조금만 시야를 열어볼 거예요. 차 막히고 돈을 더 쓰더라도 남들 다 하는 건 나도 해보고 말이에요. 그래야 내 아이들도 매 순간을 즐기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점점 일상의 쳇바퀴에 갇혀버린 틀을 깨고 싶어요.


일은 어떻게 하죠? 아직 아이들 한참 클 땐데 맞벌이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인에게 나 요즘 돈은 좀 없어도 사는 거 넘 좋다고 했더니, 그러더라고요.


돈 있으면 더 좋다!


아, 그렇죠. 손주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할머니 할아버지 말처럼. 돈은 없어도 좋을 수는 있지만 있으면 더 좋은 거, 그런 거죠. 근데 최소한 돈 벌려고 직장에 얽매이진 않을 거예요. 뭘 해도 우선 맘이 편한 지점을 찾을 겁니다.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선택할 거예요. 이미 내 마음속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올해는 그 답을 현명하게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차례네요. 조하리 창으로 새해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요. 나는 몰랐는데 타인이 보는 저는 꽤나 용기 있는 사람이래요.


새해 기운 가득 담아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할 용기를 낼 거에요!!

그러려고 새해 일출을 두 번이나 봤습니다.

고즈넉한 1월2일 일출 - 임해자연휴양림
북적북적 1월1일 일출 - 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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