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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제인 Feb 03. 2023

왜 일하지 않는 자는 두려운가

실재하지 않는 두려움에 관해


#0

길 한복판에 웅크리고 있는 개는 물지도 않고 쫓아오지도 않는데도 왜 두려운가. 물 수 있고 쫓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개는 무는 동물이 아니라 물 수도 있는 동물이다. 물 수 있기 때문에 대비해야 하는데, 어떨 때 물고 언제 물고 왜 무는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할 수 없다. 그 개에 대해 아는 것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 수 있고 쫓아올 수 있는 것들은 물지 않고 쫓아오지 않을 때도 무섭다. 사납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 어떤 짓을 언제 어떻게 왜 할지 모르는 사람은 길 한복판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개와 같다...(중략)... 무서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 이승우, 소설가의 귓속말 중




#1

 일하지 않는 자는 두려운가

(Feat. 돈이 있는 사람은 왜 자유로운가)


왜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가.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원할 때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은 가져서가 아니라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 언제 쓰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잔고가 있어야만 하는데, 언제, 어떻게, 왜, 얼마큼 쓰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잔고를 얼마나 채워두어야 할지를 알 수가 없다. 지출에 대해 아는 것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원할 때 돈을 쓸 수 없다사실 돈을 쓸 일이 없다고 해도 두려운 일이다. 돈이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다. 돈이 없는 사람, 돈을 위해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길 한복판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개와 같다. 무서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돈이 없는 사람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원할 때 언제든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쓸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원할 때 마음껏 쓸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다.


- 이승우 작가님의 책 일부를 글의 주제에 맞도록 변형하여 인용 및 작성하였습니다. 이승우 작가의 책을 읽은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웅크리고 앉은 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 두려움의 이유를 엉뚱하게도 거기서 깨달아버렸다. 그 책에서 말하는 주제랑은 다른데도,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은 어떻게든 글로 뱉어내 버려야 머릿속에서 사라질 수 있나 보다.



#2

두려움의 실체


연말정산 서류를 제출하러 회사에 다녀왔다. 하루종일 두려운 감정에 파묻혔다. 이 회사가 나의 생계를 더 이상  책임져 주지 않을 순간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나는 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두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들의 교육, 요하지 않아도 예쁘니까 소비하던 물건들을 더 이상 살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두렵다. 두려움의 이유가 실재하는 통장의 잔고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라면 내 두려움 또한 실재하지 않는다. 실재하지 않는 두려움이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진짜로 두렵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난 쥐띠. 작년은 삼재 중에 들어오는 해였고, 내 운명론에 의하면 24년까지 계속될 것이다. 작년이 가장 독하다는 들삼재라며 (이모의 등쌀에) 엄마가 연초에 부적을 하나 받아오셨다. 엄마한테 회사 생활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그 부적은 그저 (엄마와 이모의) 노파심이었을 거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몸이 아플 거라던 스님의 말이 현실이 되자 (엄마)는 운명을 믿게 되었다. 예상했듯이 (엄마의 등쌀에) 이모는 올해도 절에 다녀오셨다. 과연 올해 나의 운명은?


스님의 말을 옮겨 적기 이전에 (난) 운명을 믿지 않았었다는 걸 확실히 해야겠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렸을지도.  이 문장은 과거형이다.







(스님과 이모의 대화)

스님 : 회사는 잘 다니고 있나요?

이모 : 그.. 그럴 걸요.
(이모는 내 휴직 사실을 모른다)

스님 : (갸웃거리며)
올해도 작년이랑 똑같네요. 아주 그냥 꽉 묶여 있는 형세예요. 부적은  다시 할 필요 없으니 그걸 그대로 잘 지니고 다니라고 하세요. 이야기한 대로 건강이 안 좋을 수 있으니 몸 관리나 잘하라고 하시오!!


(엄마와 이모의 대화)

이모 :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로)
오메오메. OO이 엄마. 스님이 이러던디. 왜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뭐라고 했다냐.

엄마 : (깜짝 놀라며)
오메오메. 내 딸이 말이여...
(중략, 후략.. 이 정도 스토리면 안 봐도 몇 시간 통화 깜임)


(엄마와 딸의 대화)

엄마 : 모모야. 이모가 절에 갔다 왔는디, 오메, 회사 잘 다니냐고 물어봤다 안 허냐!! 엄마가 이모한테는 이야기를 안 했응께 이모는 당연히 어디 어디 잘 다니고 있는디 왜 그냐 했겄지. 이럴 꺼믄 미리 이모한테 사정을 이야기할 걸 그랬나 봐야. 야야. 올해는 암 것도 허지 말고, 할라고도 말고, 그냥 가만히, 푹 쉬어라. 스님이 꽉 묶여 있는 형세라 안 허냐! 발버둥 쳐도 절대 안 된다는 거다. 그렇잖아도 엄마가 너 아등바등 사는 거 보면 월매나 마음이 아픈지... 그 부적은 그대로 가지고 다니라고 하니껜 버리지 말고 꼭 가지고 다녀라잉.
(속사포로 쏟아지는 엄마 걱정)

나 : (....)


#3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스님은 올해 내 운명이 꽉 묶여 있다고 말했고,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석했다. 운명은 존재하는가. 운명보다 내 능력과 자신감을 더 믿고 살았는데 어차피 해도 안될 운명이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예전 같으면 흥칫뿡! 무시했을 터였다. 근데 이상했다. 정말 며칠 동안 엄청난 무기력이 나를 덮쳤다. 난 절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사람인데 오히려 스님 말이 나를 꽉 묶어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며칠 동안 그 좋아하던 새벽 운동도 안 가고 두문불출했는데 이승우 작가의 글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의 두려움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뭘 해도 안될 거라는 두려움은 두렵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


오늘 요가 동작 중에 원장님이 이야기했다.


몸은 움직이되, 마음은 아등바등하지 마세요.

몸은 유연하게 하되, 더 잘하려고 애쓰지는 마세요.


그렇다.

나는 무언가를 한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등바등하지는 말자.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돈이 없어질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실재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질 수도 있지만

벌 수도 있다.

것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지금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유다.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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