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제인 Mar 04. 2023

직장이름 빼고 자기소개 해보세요


원우회 수첩 제작을 위해서 개인정보에 변경 있는 분은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몇 달 전 대학원 단톡방에 공지가 떴다.

주소나 연락처보다는 직장 정보가 바뀐 사람이 많다.


여기저기서 소속 변경 요청이 속속 올라온다.

재직자 중심의 특수대학원이다 보니 직장 정보가 그를 설명하는 중요한 정보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답글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소속이 신분을 결정하는 것 같다.

대통령은 명함이 없다지.


누구나 이름을 아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부연이 필요 없다.

무명직장이라도 그럴듯한 직함을 가진 이 또한 부연이 필요 없다.




고용의 형태를 주관적으로 구분해 봤다.

크게 종류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적극적 고용이다.

남들한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무형의 복지, 즉 단단한 소속감을 제공한다.


다른 하나는 소극적 고용이다.

회사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행정적 기능만 한다. 나머지는 개인의 몫이다.


사회적 신분은 적극적 형태의 고용으로 획득된다.


그런데 고용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가.

왜 사람들은 고용되는 것을 훨씬 자연스럽받아들이나.


이름 석 자, 개인으로는 단단한 브랜딩이 어려워서?


단순히 어렵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소속감이 가장 확실한 자아실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쉬면서 일의 의미를 곱씹다 보니

돈과 일의 관계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돈만 벌 수 있는 일은 어떤가.


같이 독서모임 하는 멤버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책을 예로 들었다.

이 책 저자인 김예지 작가는 일주일에 3번은 청소일을 하며 생계를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은 본인이 행복한 일을 한다.

많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는 걸 떠올리면

그의 삶의 방식도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예상외로 멤버들 답변은 부정에 가까웠다.

이유를 들어보니 사회적 시선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거였다.




대학원 직장정보 수정요청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직장을 옮긴 것은 아니고 내부 승진을 하신 모양이다.

직급이 바뀌었으니 수정을 해달라고 한다.


내부적으로 그 직함이 얼마큼의 권한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똑같은 실장, 부장이라도 직장마다 가진 위치는 다르니까.

그냥 그분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자신감을 보니 좋은 자리인가 보다 싶을 뿐이다.


그분에게 좋은 직장, 좋은 직함이라는 소속감을 빼면 자기를 어떻게 설명하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 청소일 하면서 필요한 돈 열심히 벌고, 행복하게 살아요." 하는 설명이 더 마음에 와닿는 건 왜일까.




나는 이곳, 브런치에서

가진 게 많거나 이룬 게 많은 사람의 글보다

자기 일을 주체적으로 정의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작가님들을 구독하고 응원한다.


단단한 소속감 속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진솔한 글 속에서 진짜 그 사람을 본다.


또한 이곳에서 내가 이룬 것, 가진 것을 어필해서 구독자를 모을 생각은 없다.

오히려 단단한 소속감에 기대어 나를 잃아버렸던 시간에 대해 기록한다.

과정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변화가 행복할 따름이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가 개강했다.

매번 첫 수업에는 자기소개를 한다.

이번 학기는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볼까 고민한다.

직장 이름을 빼고 나를 설명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일하지 않는 자는 두려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