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로 둘째가 아들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 아이 이름 석 자 중에 내 지분은 한 글자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조용히 분노했다.
" 아니, 내 아들 이름인데 성이랑 돌림자 빼면 한 글자밖에 못 고르는 거야? 이런 게 어디써어어어~~우리 돌림자 안쓰면 안돼?"
남편에게 웃으며 조곤조곤 항의했다.
"응. 안돼"
합의의 여지는 없었다. 시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아들의 아들은 3분의 2의 운명을 이미 손에 쥔 채 태어났다.
가운데 한 글자를 요리조리 끼워맞추며 양 쪽에 깊이 박힌 글자 사이에 최고로 어울리는 모양을 찾아 헤맸다. 억울해, 억울해. 도저히 예쁜 이름이 안나오잖아!!!
#1.
나의 2호기.
소중한 아들의 10년 인생에는 마치 내가 겨우 채워넣었던 가운데 이름처럼 구멍이 숭숭하다. 메르스 유행으로 돌잔치는 취소됐고, 코로나로 초등입학식도 취소됐다.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서 아들 둘째로 태어난 몫으로 운명의 3분의 2를 결정지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첫째만한 애틋함도, 막내만한 사랑받이도 아니었다. 눈치밥으로 엄마아빠가 기뻐하는 대가로 말을 삼키는 쪽이었다. 그럼에도 늘 자기 몫을 조용히 해내므로 손이 타지 않는 아이다.
그래서 어떨 땐 마치 어릴 적 추억 없이 데려다 키운 아이 마냥 종종 할 말을 잊었다. 나는 돌 때 뭐 잡았어? 하면 응. 넌 돈 많이 벌라고 지폐 잡았어! 하고 말을 지어냈다. 엄마 왜 나는 초등학교 입학 할때 아무도 안왔어? 하면 응. 아무도 안 간게 아니라 아무도 못 간거야. 했다.
내 아이는 아토피 환자였다.
스테로이드를 일절 쓰지 않고 식이조절과 보습만으로 2년이 걸려 완치했다.
어린이의 인내심으로는 어림없는 것들을 참으로 많이 꾹꾹 눌러내며 살아온 아이다. 아토피 완치 후 처음으로 우유를 마셨을 때, 처음으로 메추리알을 먹었을 때, 햄버거를 먹었을 때, 아이 표정을 기억한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세상에 있다는 걸 8살이 되어서야 알게 된 아이다. 상처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까무잡잡한 아들의 손을 잡으면 마음이 헛헛하다.
가려움에 같이 잠못 들었던 수많은 밤들.
독한 스테로이드 치료에 기대고 싶어 발버둥치던 날들.
남편의 휴직과 치유 여행.
우유, 계란, 밀가루, 돼지고기를 뺀 음식 조절.
(봉지에 알러지 유발식품으로 지정된 이 네가지를 빼면 놀랍게도 살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렇게 힘든 아토피 투병을 거쳤음에도 이렇게 빨리 그 기억을 잊었다는 게 때론 놀랍다. 나랑 남편만 보는 비공개 밴드에 적힌 2호기 육아일기에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고통이 가득하다.
1호기와 3호기 육아일기에는 온통 까르르 재롱 영상인데, 2호기 일기에는 고름과 상처로 가득한 치유과정만 남아있다. 아이들에게 가끔 어릴 적 이야기를 하다가 일기를 같이 보는데 2호기에게는 5살~7살 사이의 게시믈을 빠른 속도로 올려버린다.
그럼에도 우리 2호기가 가장 좋아하는 신체부위는 "손"이다. 아직도 잘 때 내 손을 쓰다듬다 잠이 든다.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여자친구 손이나 많이 잡아줘. 하지만 소용없다. 조금이라도 손이 거칠어진다 싶으면 빵이나 우유를 먹으라고 입에 갖다 대도 용캐 참아낸다.
아이의 작은 소우주 안에는 온갖 식이조절의 기억과 몸의 고통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치료를 위해 남편이 휴직하고 제주, 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닐 적, 이 기록을 어떻게든 남겨볼까 했었다. 그 때 못했던 기록을 지금이나마 이 곳에 남겨두려고 한다.
통상적인 피부과 치료에서 자연치유를 택하게 된 이유.
여러가지 치료 시도들.
그간의 고통도.
기록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겠지만 철저히 나와 2호기의 관점에서 재구성될 것이다. 세 아이의 복잡한 육아 역학관계에서 2호기랑 엮인 실타래만 뽑아낼 것이다. 2호기에게 엄마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써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