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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제인 Aug 25. 2022

고래가 내게 오는 순간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드라마 속 우영우가 영감을 얻는 순간마다 바람과 함께 고래가 등장하는 장면.

우영우를 보신 분들이라면 꽤 익숙한 장면일 겁니다.


에게도 고래가 꽤 자주 찾아옵니다.

우영우와 차이점이라면 회사 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점이에요. 경험적으로 회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 장려하고 그걸 실현되도록 하는 조직 문화는 그저 이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디어 역시 위에서 시키는 여러 가지 "일" 중에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진정한 주인 의식이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연봉이라는 대가를 전제로 한 성과 측정방식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는 별로 효율적인 장치가 아닙니다. 특히 대기업이라면 제도와 시스템에 갇혀 더욱 그렇죠. 안타깝지만 직장인 대부분 그게 나를 매우 귀찮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아이디어로 인해 매일 진척을 체크당하고 실적을 조임 받는 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더군요.   


그래도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했던 시기가 있긴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일했어요. 성과도 있었고요. 근데 그러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 비교적 큰 관심을 갖지 않아야 가능합니다. 필요하긴 한데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은 일이요. 중요도는 보통 경영상 의사결정에 따라 뒤집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필요성보다는 중요한 일이 거의 우선순위로 올라오잖아요.

그리고 결과가 눈에 보여야 가능합니다. 프로세스나 업무 R&R처럼 추상적인 일은 만들어 놓아도 그게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당장 내가 쓴 글 하나로 인해 조회수가 올라가고 좋아요가 달리는 일은 다릅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글)과 성과(조회수)가 명확합니다.


그래서 때론 너무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소소하게 눈에 보이는 뭔가를 하는 게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지난 글에서도 쓴 적이 있었어요.

 https://brunch.co.kr/@momojane/5



고래가 올 때마다 아이디어를 기록해두는 저만의 노트가 있습니다. 주제는 아주 다양합니다. 새로 배워보고 싶은 것, 사람들이 좋아하고 몰릴 것 같은 아이템, 놀러 갔다가 시도해봄직한 사업 아이템, 문제 해결방법 같은 것들이요.


그게 무어든, 실현 가능성을 떠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가슴 떨림은 언제나 흥분되는 경험이라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 어느 순간 실현되어 있는 경험도 했습니다.  적어두었다는 걸 잊고 있었는데 말이죠.





2007년에 제가 적어둔 것 중에 그때는 없었던 승차 공유 플랫폼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늦은 퇴근으로 회사 막차 셔틀을 탔고, 집 앞이 아닌 몇 블럭 떨어진 정류장에 내려 집 앞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추웠던 겨울 늦은 밤이었으니 그 시간 정류장에는 모두 평소에 같은 행선지 회사 버스를 타던 회사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지인은 아니지만 매일 출퇴근 버스에서 보는 낯익은 분들이고 신원도 확실한 분들이니 안심이었습니다. 덜덜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몇몇은 택시를 잡아타고 떠났습니다. 같이 타고 가자고 하고 싶었어요. 근데 그러진 못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같은 회사 사람이고 저희 집 이파트 단지에 사시는 분인걸 알고 있었어도요. 결국 몇십 분을 더 기다린 몇몇 분들은 저와 같은 시내버스를 타고 같은 곳에서 내렸습니다. 그분들과 버스 비용을 합쳤다면 택시 탈 돈도 충분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우영우 고래 비슷한 게 온 것 같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다. 버스 회사는 개별 요금을 받고 모르는 사람들을 한 차에 실어서 나르지만, 개인으로 보면 거기 같이 탄 사람들이 어떤 공통 연결고리가 있었다면 버스가 아닌 더 편한 교통수단, 예를 들면 택시를 이용하면서도 더 싼 요금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버스를 선택을 하는 이유는? 버스회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정류장에서 타고 내리는 신원이 확실한 사람들이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을 모아주기만 하면 돈이 되지 않을까.


 지금 남편인 당시 남자 친구에게 눈을 반짝이며 이 이야기를 했더니 업계 반발과 법적인 문제 같은 걸 들어서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군요. 물론 나는 사업가가 아니니 그러고 말았지만, 실제로 몇 년 뒤에 정말로 이런 일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법적인 이슈도요^^



뭐, 지난 무용담에 가깝긴 하지만 아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은 같아도 행동은 다른 경우가 다반사이니까요.



내가 그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걸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있었고,

그중에 행동을 성공시킨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생각을 했다고, 행동에 그저 옮겼다고 보상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성공시키는 거죠.


지금까지는 순수하게 아이디어를 적는 기쁨만 누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저 재미로 떠오르는 소소한 아이디어도 있고, 성공할 만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사람, 자금, 시장 상황 모든 게 맞물려야 성공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시도해야만 성공할 기회도 있다는 거겠지요.


저는 재밌는 일을 대충 하고 싶어요.

내 아이디어를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성공할 수 있을지 마음껏 테스트해보고, 실패하면 수정하면서 "눈에 보이는" 성장을 경험하고 싶어요. 그 성장의 조건이 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본업을 하면서 부캐를 키워야겠죠?ㅎㅎ

본캐와 부캐가 건강하게 공존하는 방법이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래가 문득 찾아올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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