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겨울 패딩을 바리바리 끌어안고 굳이 멀리 있는 세탁소로 가려던 참이었어요. 불과 몇 주 전에 1년 전 세탁비가 미납이라고 세탁소 주인한테 연락이 왔거든요. 기록이 빠진 게 아닐까요. 몇 달 전도 아니고 1년 전 세탁비를 왜 이제야 이야기하세요. 제 기억에 당시 배달을 해주셔서 분명현금으로 지불했다구요.
세탁소 주인은 기록이 빠질 리가 없다. 나는 낸 것 같다. 설왕설래했죠. (아니, 이런 경우가 있냐며 저는 버텼습니다만...) 상황을 가만 보고 있던 남편이 조용히 돈을 내고 왔네요.
다음에 오면 옷 한 벌 서비스받기로 했대요.
...
오늘 겨울옷 세탁 맡기려구요.
미납이라고 주장하는 돈 (내 맘 속엔 두 번 낸 돈...)을 냈지만 이건 쫌 아니야, 하는 맘이 없어지지를 않더라구요.에잇! 거기 다시 가나 봐라. 나름 동네 세탁소 보이콧이었죠. 옆에 있던 남편이 세탁소 앞에 잠깐 세워봐바. 합니다. 왜? 내가 가서 맡기고 올게. 아, 그러지 말란 말이야~~
나도 예전엔 안 가고 말지 했는데 말이야. 헤헤. 한 마디만 하면 할인해 준다잖아. 헤헤
이 남자. 난 심각한데 고깟 할인에 홀딱 넘어간 거야?
철 없이 헤헤 하는 남편을 보고그냥 피식 웃고 말았어요.세탁비 할인보다 내 맘을 녹인 건 이 사람이세상을 사는 방식이에요. 안 가고 말지 했던 건 사실 내 얄팍한 자존심이었거든요.
남편이
남 편이 아니라
내 편입니다.
세탁을 맡기고 나서도 코트 한 벌 서비스받았다며 좋아하는 남편 모습이 자꾸 생각나네요. 남편이 세탁비를 내러 가면서 네가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야? 라며 따졌다면 난 어땠을까요. 남편이 오늘 겨울 옷을 맡기면서 야,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잖아. 자존심 세우지 말고 가서 그냥 맡겨. 했다면 난 어땠을까요.
(((나랑 사는 이 남자,
너무 괜찮지 않나요.)))
이 동네 떠나기 전까지 돈 떼먹은 사람마냥 가게 앞 주인아주머니 피해 다니고, 동네 세탁소 배달 서비스도 포기하고, 울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 가게 떡볶이도 못 먹게 했겠죠? 어쩌다 한번 보는 세탁소 주인이랑 그러는 건 뭐 상관없지만, 매일 얼굴 보고 사는 남편도 쥐 잡듯이 쳐다봤겠죠.
세상 살면서 남들에게는 좋은 사람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상처 주는 경우가 참 많아요. 세탁소 주인 외상은 갚아주면서 억울한 아내 맘은 몰랐다면 말이죠. 오늘 남편의 헤헤 했던 한 마디는요. 조금은 손해보는 듯 살 것. 그때 하나 써비스 주기로 하셨잖아용~~ 하는 존심 버린 말 한마디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 (혼자였다면 또 똑같이 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