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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제인 Jul 10. 2023

홈스쿨링 하는 엄마입니다만(2)

아이마음을 담보 잡힌

"아이 엄마랑 공부한다면서요~~"

"아... 네.."


"저도 과외하면서 4학년 때까지 제가 가르쳤는데 밥상머리까지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지는 거야. 애랑 사이만 나빠지고.. 근데 내려놓으니까 너무 편해. 하하하"

"....."


"OO이 친구들한테도 이야기 듣고 그러는데 OO이도 너무 힘들다고 한다더라고요. 이러다가 공부가 싫어질 수도 있어요. 이제 좀 내려놔야 돼요. OO엄마"




초등학교 앞 문구점 사장님은 이 동네 아이들 집안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른바 "정보 잡화점"이다. 주변 아파트 시세부터 누가 언제 들고 나는지, 아이는 몇이고 누구랑 어울려 다니며 무엇을 하는지, 때론 부모도 잘 모르는 우리 아이의 바깥생활을 더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의 투명한 입과 행동으로 어른들이 굳이 하지 않는 집안 이야기도 물론 포함이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학교 준비물을 구입하러 갈 때면 으레 이것 사달라 저것 사달라 조르기 마련인데, 사장님은 엄마의 대응을 조용히 살피다가 슬며시 아이에게 몇 천 원 내에서 골라, 라든지, 이건 집 안에서는 하면 안 되는 장난감이야,라는 말로 엄마 편에 서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만 혼자 문구점을 드나들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이가 좋아하는 뽑기를 한 번 더 하게 해주기도 하고, 부모가 사주지 않을 식품들, 유행하는 장난감들을 아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제공한다.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취향을 수집할 수 있는 온갖 잡담(?)이 난무하는 것이다. 잘 몰랐을 때는 사장님이 너무 친절하시다, 하며 나도 슬쩍 끼어 소리소문을 듣는 재미가 있었는데, 실상을 알고 나니 거기에만 가면 이 분이 우리 가족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꺼림칙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 막내 준비물을 사러 들렀더니 첫째 속마음을 나에게 흘리며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홈스쿨링을 한 지 1년 가까이 되었다. 확실히 학원에 다닐 때보다 스스로 해야만 하는 공부량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졌다. 시간 때우기식 학원 뺑뺑이가 아니라서 이 입장에서는 대충 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내가 아이의 실력을 지켜보고 판단할 수 있게 되니 지식의 습득효율도 높아졌다. 학원 커리큘럼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필요한 만큼 반복하고 나아가면서 진도를 조절한다.


단점도 있다.

아이들이 그날그날 소화해야 하는 분량에 대한 압박이 커가는 것 같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아이들을 답답하게 하는 것 같다. 싫어도 꾸준히 해나가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했던 의도도 있다. 힘들어하는 것을 알지만 이겨내야 한다고. 당근과 째찍을 모두 쥐고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학원 탓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직장 생활하느라 아이 공부는 뒷전이던 불과 1년 전.

내가 믿고 있던 아이 실력과 실제 능력의 괴리감을 깨닫게 된 그 순간. 그때도 똑같았다. 학원은 아이를 책임져 줄 수 없었다. 이럴 바에야 내가 확실히 짊어지고 가보자, 마음을 먹었었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 역시 학원을 안 가도 된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이제는 제발 학원 좀 보내달라고 성화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감내해야 할 부분은 있다.


지금 걱정되는 것은 아이의 마음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시기에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크면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모른다.


아이의 마음을 담보로 나를 갈대처럼 흔들어 놓는

문구점 사장님이 참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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