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력 12년차도 가장 큰 고민이 '오늘은 뭐해먹지'다. 겨우 아침 메뉴를 정하고 차려 먹으며 그 고민을 집어삼키는 중인데 저녁메뉴라니? 넘어가던 밥이 도로 기어 나오는 기분이다.
식사 약속에서나한테메뉴를 물으면 질색하는 편이다.엄마 직업병(?) 발동.나를 배려한 질문인 게 분명하지만밖에 나가면 남이 골라준 메뉴로 남이 차려준 밥을 먹는 게 가장 행복하다. 먹는 거 자체가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인데 난 왜 아닌 걸까. 아니, 왜 아닌 게 돼버렸을까.
어려서부터 난 입이 까다롭지 않고 먹는 걸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 다이어트를 했었다.
첫 번째 계기는아이를 낳고 이유식을 하면서부터였다.음식은 "먹는 게 아니라 먹이는 일"이 되었다. 사 먹든 만들어 먹든, 아점이든 점저든, 맵든 짜든, 식욕이 당기는 만큼 원하는 걸 먹기만 하면 되었었는데, 이제는이유식에 쓸 수 있는 식재료로,영양을 생각하며, 때에 맞추어, 떠먹여야 하는 일이 되었다. 어른과 아이의 식단은 분리돼야 했고하루 세끼가 아니라 하루 열 끼니를 준비했다. 서서히 반조리 이유식과 사 먹는 밥으로 옮겨갔다.
두 번째 계기는 아이가 아토피를 겪으면서였다.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어졌다. 알레르기 유발식품인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 우유, 이 네 가지를 제외하면 살 수 있는 가공식품이 얼마나 남을 것 같은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식재료 포장지 뒷면에 첨가물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빵과 과자는 물론이고, 소고기 카레에도 돼지고기가 들어있다는걸 알지도 모르겠다. 근 2년간 사 먹는 음식은 언감생심, 싱싱한 채소와 소고기만 넣어 직접 해 먹는 음식으로만 살았다. 건강을 얻었을 것 같지만 정작 가족들은 모두 말라갔다 ㅋㅋㅋ
음식이 보약이라고들 한다.
단, 자기가 좋아하는 걸 즐겁게 먹어야 한다.
아이들이 밥 안 먹고 간식만 먹으면 못 먹게 하고, 어른도 영양을 생각해서 밥을 약 먹듯이 가려먹기 시작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다. 특별한 질병이 없다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주변에 미식가가 있다면 따라다니며 먹으면 제일 좋다.
이제야 음식에 조금씩 고춧가루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카드를 쥐어주고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라고 하는 일도 몇 번 해 봤다. 애들도 집밥보다 그걸 더 좋아한다.^^;
앞으로는 엄마인 내가 모든 음식에 관대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더 이상 이유식을 할 일도, 아토피 식단을 고수할 필요도 없으니까. 굳어져버린 그때의 습성이 진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