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는 핏빛 구정물을 뚝뚝 흘리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엄마는 다급하게 소리친다.
저기저기, 저기에 버려야지!!!!!
차에서 뛰어내린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아무렇게나 던진 봉투를 제자리에 쑤셔놓고는 환히 웃는다.
엄마, 나 잘했찌이? 히히히
여자아이는 심부름을 완수하고 차에 올라 자리를 잡는다. 동시에 남자아이도 쏜살같이 올라탄다. 둔탁한 비명소리가 이미 울부짖고 있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합쳐진 건 바로 그때였다. 9인승 SUV는 세 아이의 난타전으로 밖에서 보일만큼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자아이의 미소에 화답하기도 전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상황에 엄마는 어떠한 스탠스도 취하지 못한다.
구정물 흐르는 음.쓰.를 처리한 첫째를 칭찬해야 할지,
심부름 보상에 무임승차하겠다는 둘째의 욕심을 설득해야 할지,
난데없는 차 안 자리싸움에 새우등 터진 막내를 달래야 할지.
엄마의 표정은 이미 일그러진다. 이성적인 판단은 글렀다. 그래,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에서 정보의 양이 늘면 사람이 산만해지는 거랬어. 내 판단력이 예전만치 아닌 건 나이 탓이 절대 아니로다.
띠링~
집중력 게이지가 1% 하락하였습니다!
엄마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무서운 표정으로 상황정리를 대신한다. 늘 이런 식이다. 세 아이의 이해관계는 순서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뒤엉키고 겹쳐져 그 누구의 감정도 해결되지 못한 채 미결로 남는다. 외식은 무산되었다. 뒤집어질 듯 흔들리는 차를 뒤로 하고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엄마는 차에서 탈출한다.
피난처는 평화로운 집 안.
클래식을 틀고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아이들은 곧 그들끼리 상황을 정리할 것이다.
삐삐삐~
현관문이 열린다. 세 아이가 하하호호 비집고 들어온다. 어린아이는 차에서 과자 한 봉지를 찾았다며 연신 히덕거리며 자랑한다. 아직 분노의 카오스에 있는 엄마의 마음은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띠링~
수명이 1년 단축되었습니다!
나 10분 후에 집에 도착해요.
카운트다운 시작.
남편의 집에 오면 바로 3박 4일 외출길에 나설 것이다. 나는 28인치 캐리어에 다섯 가족 짐을 눌러 담고 아이들은 각자 취향껏 개별 짐을 싼다.
10분 뒤 출발이야!!!!!!
넌 아직 준비 안 하고 뭐 해!!!
준비 안 된 사람은 놓고 간다!!!
다시 카오스.
온갖 협박과 회유.
아빠가 탄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다가온다.
엘베 문이 우아하게 열린다.
짠!
엘리베이터 앞에 외출준비를 마친 세 아이와 캐리어가 흐트러짐 없는 자태로 아빠를 맞이한다.
자아~! 즐거운 여행 시작이야!
지난 재앙은 나만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