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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제인 Feb 29. 2024

재앙은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전쟁 같은 일상

여자아이는 핏빛 구정물을 뚝뚝 흘리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엄마는 다급하게 소리친다.


저기저기, 저기에 버려야지!!!!!


차에서 뛰어내린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아무렇게나 던진 봉투를 제자리에 쑤셔놓고는 환히 웃는다.


엄마, 나 잘했찌이? 히히히


여자아이는 심부름을 완수하고 차에 올라 자리를 잡는다. 동시에 남자아이도 쏜살같이 올라탄다. 둔탁한 비명소리가 이미 울부짖고 있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쳐진 건 바로 그때였다. 9인승 SUV는 세 아이의 난타전으로 밖에서 보일만큼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자아이의 미소에 화답하기도 전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상황에 엄마는 어떠한 스탠스도 취하지 못한다.


구정물 흐르는 음.쓰. 리한 첫째를 칭찬해야 할지,

심부름 보상에 무임승차하겠다는 둘째욕심을 설득해야 할지,

난데없는 차 안 자리싸움에 새우등 터진 막내를 달래야 할지.


엄마의 표정은 이미 일그러진다. 이성적인 판단은 글렀다. 그래,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에서 정보의 양이 늘면 사람이 산만해지는 거랬어. 판단력이 예전만치 아닌 건 나이 탓이 절대 아니로다.


띠링~

집중력 게이지가 1% 하락하였습니다!




엄마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무서운 표정으로 상황정리를 대신한다. 늘 이런 식이다. 세 아이의 이해관계는 순서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뒤엉키고 겹쳐져 그 누구의 감정도 해결되지 못한 채 미결로 남는다. 외식무산되었다. 뒤집어질 듯 흔들리는 차를 뒤로 하고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엄마는 차에서 탈출한다.




피난처는 평화로운 집 안.

클래식을 틀고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아이들은 곧 그들끼리 상황을 정리할 것이다.


삐삐삐~

현관문이 열린다. 세 아이가 하하호호 비집고 들어온다. 어린아이는 차에서 과자 한 봉지를 찾았다며 연신 히덕거리며 자랑한다. 아직 분노의 카오스에 있는 엄마의 마음은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띠링~

수명이 1년 단축되었습니다!




나 10분 후에 집에 도착해요.


카운트다운 시작.


남편의 집에 오면 바로 3박 4일 외출길에 나설 것이다. 나는 28인치 캐리어에 다섯 가족 짐을 눌러 담고 아이들은 각자 취향껏 개별 짐을 싼다.


10분 뒤 출발이야!!!!!!

넌 아직 준비 안 하고 뭐 해!!!

준비 안 된 사람은 놓고 간다!!!


다시 카오스.

온갖 협박과 회유.


아빠가 탄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다가온다.

엘베 문이 우아하게 열린다.


짠!

엘리베이터 앞에 외출준비를 마친 세 아이와 캐리어가 흐트러짐 없는 자태로 아빠를 맞이한다.


자아~! 즐거운 여행 시작이야!


지난 재앙은 나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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