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있던 얼굴들을 괴상한 가면으로 가려 놓으니 자기 모습이 제일 웃긴지도 모르고 서로들 서로를 보며 배꼽을 잡기 바빴습니다. 평소에 하지 못한 과감한 포즈도 해 보고요.
근데 재밌는 건요.
사진에서 내가 나인지 아무도 모를 텐데도 코스튬을 정말 신중하게 고르게 되더군요. 그리고 심지어 사진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를 가장 먼저 보게 되네요.
얼굴이 없는 이 사진에서 "나"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심지어제가 없는 사진에서 저를 찾아보라고 해도 아무도 모를 텐데요.
(글의 의도와 달리 갑자기 심오해졌네요ㅋㅋ 역시 이게 접니다.)
네,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그냥 재미로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저에게 할로윈은 그냥 아이 유치원 행사일 뿐이었는데 그저 재밌는 추억이 하나 생겼고, 때마침 시간이 아주 많은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바쁘게 지낼 때는 거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것 외엔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동안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성적표, 인정, 의미, 평가 같은 거겠네요.
어떤 일을 하는 "내"가 아니라, 내가 해내는 그 "일"만 중요하게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걸 얻기 위해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재미, 보상, 자유, 놀이 같은 것들은 상대적으로 의미를 덜 두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글도 그랬습니다.
뭔가 의미 있는 글을 써야만 할 것 같고, 독자들에게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줘야 할 것 같았죠. 그냥 나만 보고 싶은 일기 같은 글은 쓰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다지 대단할 게 없는 내 일상의 한 장면을 글감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전 글에서 제 기준으로는 가장 쓸모없는 글을 적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쓸모없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이없고 재미없어도 재채기가 필요 없는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