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회사에서 인간관계는 나에게는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같이 술 한 잔 하고 나면 동지가 되어 있고, 명함 한번 주고받으면 파트너가 되어 있다. 그게 나쁜 게 아니라,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러고 나면 꼭 업무적으로 주고받아야 하는 게 생겼다.
거래를 가정한 관계가 맘 속 깊은 곳에서 늘 불편했다. 그리고 상대가 나에게 뭘 바라는 것 같으면 뱀이 또아리를 틀 듯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들곤 했다.
직장 인간관계는 회사를 떠나면 끝이라는 말을 정말 자주 듣는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난 좀 슬프다. 난 첫 직장에서 15년간 일해왔고 신입 때부터 같이 일해오던 사람들이 아직도 주변에 많이 남아 있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껴지면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했고, 진심으로 대했다. 나이와 지위는 상관없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이야기가 뜸했다 해도, 그 사람이 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친구의 개념은 상대적인 것 같다.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고 대했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면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에 친구의 기준을 좀 낮춰보자 생각했다.
계기는?
음. 없다.
그냥.
친구가 적은 것보단 많은 게 좋으니까 ㅋㅋ
어른이 될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어릴 때처럼 시시콜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적어진다. 게다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든다. 내 성격이 특이해서 말이 안 통하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말로 하면 인생관이 뚜렷해지고, 나쁜 말로 하면 고집이 세어진다. 내 생각과 다른 말을 들으면 자기만의 필터를 거쳐서 저장한다. 한마디로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사회생활 연륜은 있으니 싫은 말은 적당히 흘려듣고 모나지 않을 정도의 리액션을 장착한다. 니편 내 편은 항상 변한다. 내가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이 친구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생각이 같다는 걸 기준으로 친구가 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어릴 때 친구가 평생 가는 이유가 바로, 순수한 마음이 한 톨이라도 더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회사에서 종종 친구라고 하는 두 사람을 보면, 그 둘이 정말친한 것인지, 친해 보이는 것인지 헷갈린다.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오며 가며 인사한 사이, 어쩌다 한번 같이 일했던 사이, 사는 곳이 가까워서 비슷한 시간에 출퇴근하는 사이, 취미가 같은 사이. 이 정도 공통점만 있어도 난 당당히 외칠 거다.
"우리 친구 아이가!!"
어른끼리 친구가 되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어린이가 친구를 만드는 방식은 어른의 그것과 다르다. 나랑 친한 애랑 친한 애, 내 비밀을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는 애, 아끼는 걸 줘도 아깝지 않은 애, 학교 끝나고 우리 집에 한 번이라도 더 놀러 왔던 애.
어린이가 친구와 절교하는 방식 또한 어른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다시는 안 본다, 딴 친구랑 어울리면서 이제 다른 편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 애 욕을 하거나 따돌린다.
어른이 되면 친해지는 방식도 그에 맞게 성숙해져야 한다. 어릴 때처럼 편 가르기, 따돌리기, 모함하기 같은 방법을 그대로 쓰는 건 백번 옳지 않다.
뭔가 대단한 공감대는 없어도, 담백하게 서로를 드러내고같이 있는 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교류하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