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섯 번째 팀장님(A라고 하겠다)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신고한 지 꼭 한 달 하고3일 만에 그건 괴롭힘이 아니라는 회사의 결정이 내려졌다.
그 결정의 의미는 뭘까.
인사팀 담당자는 "이 결정이 그 일이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 전에는 아니었지만, 신고한 순간부터는 이해를 바란 게 아니었다. 이해와 변화를 바랐던 9개월은 내 몸과 마음을 헤집어 놓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라는 말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느새 미움과 분노가 가득 차 버린 내 마음을 앞에 두고 상담사님은 나에게 물었다.
이 일을 되돌리고자 한다면 언제로 돌아가면 가능할 것 같으세요?
이 질문을 받기 전부터 내 맘 속에 항상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내가 처음 휴직 면담을 했던 6월.
처음으로 A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그때.
그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나의 건강을 염려해 줬더라면?
하지만 그 순간 처음 내민 내 손은 처음으로 내쳐졌고,
그 이후, 몇 번이고 더 가혹하게 내쳐졌다.
그것도 실적과 평가에 대한 부적절한 압박으로.
팀장의 지위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회사에서 내린 결정은 A의 방식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인의 스트레스 상황은 욕설과 폭력이 있었을 때여야 괴롭힘으로 인정받는다. 업무 상황과 그 사람의 성향, 분위기 등처럼 전후 맥락과 해당 업무에 대한 부연이 있어야 판단이 가능한 사안인 경우에 대부분 회사는 보수적인 판단 기준을 적용한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음에도 결과를 확신했던 것은 나는 피해자라는 사실 때문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건강을 잃고, 상황에서 멀어진 후에도 수개월을 괴로움에 갇혀 살게 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어제 내가 다른 결론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기대만큼 통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와 A가 가진 고통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억울함이 A가 느낄 억울함으로 옮겨갈 뿐.
지금 A가 느낄 후련함이 내가 느낄 후련함으로 옮겨올 뿐.
이미 내가 한 달 하고 3일 전에 내린 결정에 누가 이기고 지고는 없었다. 진흙탕에 모두 발을 담갔지만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