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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제인 Aug 15. 2022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사람의 몰락

팀장의 뒷모습

15년 동안 6명의 팀장을 만났다.


왠지 이 숫자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과거에 만났던 남자 친구 수를 하나씩 늘려가는 것 같이 내 과거도 쌓여가는 모호한 느낌이랄까.


 팀장님은 대기업에서 흔치 않게 정년 퇴임을 하셨다. 고객사의 IT 대기업이었으니 관련된 하청 업체만 수십 군데. 자식 두 명을 모두 회삿돈으로 대학 졸업시키고 서울 특급호텔에서 첫딸 결혼까지 으리으리하게 치렀다. 신입 사원인 나의 눈에 호텔 스테이크와 식장 앞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놓인 화환들을 보며 대기업 팀장 할 만 하구나, 했다. 다들 부러워했지만 마지막 회식에서 불안한 본인의 앞날에 대해 유난히 착잡해하던 모습이 마치 혼자만의 하소연처럼 보였다.


두 번째 팀장님은 내가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이에 팀 전체가 우리 회사 협력사로 통째로 아웃소싱 되면서 순식간에 "을"이 되었다. 회사에서 갑을 관계는 뭐랄까,  대단히 불합리하면서도 공식적인 계급사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능력 있는 분이셨기에 이 분을 보며 회사생활의 무념무상을 가장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세 번째 팀장님은 지금은 내 팀장님이 아니지만 신입 시절 내 사수이자 15년 회사생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분이다. 아쉽게도 별로 좋지 않은 쪽으로... 아랫사람에게는 공공의 적이고 윗사람에게 무한 신뢰를 받아 승승장구하는. 회사의 미션과 담당 임원의 신임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한번 팀장에서 밀려났지만 맘에 맞는 다른 조직 임원을 통해 부활해 10년 가까이 팀장을 해오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분의 질타와 관리방식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네 번째 팀장님은 내게 찾아온 은인이었다. 지옥 같았던  직장생활에서 조직 개편이 되면서 팀을 이동하게 되어 그동안 예전 팀장 아래서의 나의 고통을 아는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그 시절 같이 일하던 분들과의 경험은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나와 같이 한 직장에서 일해온 지 오래된 분들 이어서 회사 문화, 공감대, 성향도 모두 비슷했고 무엇보다 일에 여유가 있었고, 내가 하고 싶던 일이었다. 이후 팀장님은 법인 팀장으로 파견 가셨다가 본사로 복귀하면서 팀원이 되었.


그 이후 두 분의 팀장님은 최근 3년의 인연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다섯 번째 팀장님을 통해 내 커리어의 가장 큰 변화와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았다. 좋은 쪽으로의 영향력이었다. 지금은 법인 팀장으로 파견 중이지만 회사의 속뜻이 보이는 것 같아 나는 씁쓸하다.


나는 이 분들의 직장 경험이 곧 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기업 팀장의 권력을 아주 가까이에서 경험했고, 그 마지막도 여러 번 보았다. 그때는 못 견딜 것만 같았던 그분들의 행동이나 말을 나도 이제 조금은 이해하게 된 걸 보면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고 느낀다.



번듯한 직장의 팀장이었다가 팀원으로 강등되거나, 퇴직으로 일반인이 되는 경험은 직장인이라면 이미 겪었거나 혹은 언젠가는 반드시 겪을 일이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누구나 똑같이 받아들이기 힘든 경험일 것이다.

회사가 잘 나갈수록 그 괴리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그 무게감과 압박감이 버거웠음을 인정하고

인생을 즐기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 시점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사회생활의 의미와 내 인생을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고민해 보는 일은 꼭 필요하니까.




  난 팀장이 되어 보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인생이 어떤지 더 가까이 느끼고 있다.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싫어하지는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마음속 깊이 그들의 업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쪽에 가깝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조건의 대기업에서 열심히 살아온 업적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더 많은 연봉과 권력과 자부심, 때론 자존심은 그만한 대가가 반드시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질적인 것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신입 시절 우리 조직이 최초로 "전무님" 조직이 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 조직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거였기에 다들 기뻐했다. 그 전무님은 당시 저 연차 직원들을 모아둔 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몇 %가 10년 뒤 임원이 될 것 같습니까?
30명 정도가 있으니.. (잠시 계산해보며)
1명이 되면 3%이니 이도 많습니다.
아마 없거나 많아도 한명일 것 같군요"




당시 난 생각했다.

'아니, 여기 있는 30명이 모두 임원이 되기를 꿈꾼다면 그 확률 계산이 맞겠지. 하지만 10명만 그렇다면? 1명이 되면 10% 확률 아닌가?'


지금 난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직장생활을 멈출 수 없다. 15년 동안 이 좋은 직장에서 이 연봉과 복지를 포기하고 나간 사람은 기껏해야 3명 정도다. 나머지는 임원 되기 전에 자의를 가장한 타의로 퇴사를 하면.. 그 확률 대충 맞긴 하겠네. 슬프지만 나도 그 사람들 중에 하나구나..'


임원이 누리는 보상과 그 대가는 공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사실로 위안하며.. 임원의 뒷모습도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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