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는 어디든 있다
나도 수자가 되고 싶다고요.
시끌벅적한 미화원 휴게실에 실장이 떴다.
"오우~헬스 시작한지 3개월만에 몸이 이러면 반칙 이니여유?
3백은 들고 막 그러는거 아니예요~"
실장을 보자마자 미화원 수자는 덤벨을 드는 포즈를 취하며 실장에게 능청스럽게 립 서비스를 한다.
실장은 멋쩍게 읏으며 싫지 않은 듯, 뭐, 제대로 하면 5백도 들지, 하며 허허 거린다.
실장이 돌아서려는 찰나,
"저~이따가 잠시 면담 좀"
"그래~언제든지, 허허"
반면 미운 털이 박힌 용미는 단칼에 주말근무 시켜달라는 면담을 거절 당하고
청소나 잘 하라는 잔소리만 들을 뿐이다.
- 클리닝 업 (2022) 드라마 중 -
직장 상사 없는 세상을 꿈꿨던 적이 있다.
근태를 감시하고 성과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을 순 없을까.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하게 두면서도 성과를 내는 회사는 없는 걸까.
그렇다.
그런 회사는 없다.
만약 무언가를 자율에 맡기는 회사가 있다면 이후에 더 큰 성과를 위한 일종의 투자인 경우가 더 많다.
최저 시급 9160원을 받는 알바도,
연봉 1억을 받는 팀장도,
한 회사의 CEO라도
모두 상사를 모시고 산다.
그리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 까다로운 상사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지금보다 조금만 더 쉬운 일을 하면 상사 스트레스가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우연히 클리닝 업이라는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보며 이 것은 잘못된 생각인 걸 깨달았다.
우리의 상사는 어디든, 무든 일을 하든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는 용미보다는 수자 같은 사람이 되는 게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자가 되고 싶은 건 맞지만
너무 어려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