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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oair Nov 17. 2019

너에게는 구름, 나에게는 너의 말

- 껄로 트레킹

미얀마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부족마을에서의 홈스테이를 체험하고 싶다면 정답은 트레킹이다. 특히 껄로 트레킹은 소박하고 단정하면서도 볼거리가 다양해 여행자들에게 인기다. 1박 2일 트레킹은 3~4개의 부족마을을 지나고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현지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한다. 전기도 없고, 물도 빗물로 씻어야 하는 곳이다. 다음날에는 산과 몇 개의 마을을 지나 인레 호수에 도달한다.      


1월의 들판은 생각보다 척박했다. 건기의 대지는 마른 붉은 색을 띠며 속절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도 군데군데 농작물을 볼 수 있었는데, 가이드는 벼 수확을 끝내고 고추, 땅콩, 참깨, 옥수수 등을 재배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아이까지 동원해 열심히 밭일을 하다가도 우리 일행이 지나가면 허리를 펴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방인들을 쳐다봤다. 아이에게 우리는 무료함을 달래주는 신기하면서도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고, 우리에게 아이는 사진 찍기에 좋은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반얀트리, 소나무를 비롯해 아기자기한 나무들, 이름 모를 꽃들이 가는 곳마다 우리를 반겨주었고, 친척 집에서 열리는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곱게 치장하고 새벽부터 산을 넘고 있는 부족민들과의 만남은 뜻밖이라 더 유쾌했다. 일몰 포인트는 역사와 문화가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유적지 그 자체였다. 아마 고흐가 이곳을 봤다면 ‘밀밭’에 버금가는 명작이 나왔을 것이고, 조지 오웰이 몰레먀인 뿐 아니라 껄로에도 왔더라면 <버마시절>은 더 풍성한 내용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사랑스러워”라고 감탄할 수밖에.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나의 마음은 지옥을 만났다. 우리 일행은 나 외에 베트남 여성 2명, 한국인 중년 부부, 가이드 2명이다. 문제는 중년 부부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떠든다’는 것이다. 일행들도 들으라고 하기에는 은밀한 내용도 있고, 둘만의 대화라기에는 너무 소리가 컸다. 더구나 베트남과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한국어로 하는 말이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차라리 나도 한국어를 몰랐으면 상황이 나았을 수도 있다. 왜 나는 아무 필요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당신, 오늘 월급날이지?” “렌즈를 더 당겨서 찍어야해.” “사진 동호회 사이트에 사진 올리면 다들 부러워하겠다.” “앞에 걷는 베트남 여자애 중에는 오른쪽이 더 마음에 든다.”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에 이르자 그들과의 간격을 더 멀리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속도를 맞춰 걸어야 하는 게 한 팀의 운명이다.      


덕분에 나는 베트남에서 온 20대 청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몰레마인에 있는 파욱명상센터에서 2달간 수행을 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행하는 중이었다. 명상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발견하자 우리는 타지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중년 부부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그 말 또한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좋은 풍경이 앞에 있으니까.  

그 때 성능 좋은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눌러 대던 그가 여지없이 큰 소리로 말했다. “딱 하나가 아쉽군. 하늘에 구름 한 점 있었으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말이야.”      


오늘 나는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 말로 인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았나?

상대방의 말을 대하는 내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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