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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목지 Aug 19. 2024

05 공무원을 그만두는 이유(1)

지긋지긋했던 일이 끝났지만, 묘한 기분

  몇 주 전,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왔다. 저녁비행기였지만 내가 타게 될 진에어는 인천공항 2터미널을 이용하는 항공사였고 집에서 2터미널까지는 공항리무진을 이용해도 1시간 30분가량이 걸린다. 평일의 서울 낮의 교통체증을 고려하여 여유있게 집을 나섰다. 12시 6분에 강남역에서 공항버스를 무사히 탔고 막히는 듯 보였던 도로가 올림픽대로에 올라서자 꽤나 속도를 올리는 모습에 안심이 되어 그제서야 폰을 꺼내들었다.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만은 공항혼잡도를 확인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검색창에 입력했을 때였다. 지지부진 계속 미뤄왔던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던 오전 시간 동안 퍼부었던 비로 인해 오전에 이륙 예정이던 항공편들이 줄줄이 결항됐다는 뉴스기사들이 떴다. 그제서야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나온 시점만 해도 빗줄기가 그리 거세진 않았던데다 급하게 짐을 싸 30분에 한 대씩 있는 공항버스를 놓칠까봐 정신 없이 뛰느라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 6년하고도 3개월을 꽉 채워 비나 눈이온다는 예보라도 뜰 때면 창 밖을 내다보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내렸던 큰 눈이나 비, 실제 피해가 크지 않았더라도 무시무시한 예고와 함께 등장했던 태풍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보강 대기를 하는 동 주민센터 근무 직원들의 노고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꼬박꼬박 순번이 돌아올 때마다 비상대기를 섰으므로 이번 에는 내 시간을 얼마나 뺏길까 장난처럼 점쳐보며 풍수해와 제설 기간을 보내왔다.


 동 주민센터가 아닌 청에서 근무하는 경우 비상 대기를 서더라도 하는 일이 많지는 않다. 일도 별로 없고, 밤 새워 근무하거나 주말에 근무하면 대체휴무를 주니 더 좋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언뜻 들 수도 있지만 왜 공무원들이 비상대기에 학을 떼는 지 와닿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보겠다.


  평일 업무시간은 직원들이 정위치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비상대기를 서지 않는다. 물론 비상대기를 하지 않을 뿐이지 많은 비나 눈이 내리는 경우 현장에 투입 된다. 물 퍼내기(양수기), 빗물받이 점검, 제설 작업, 염화칼슘 뿌리기 및 위험 민원 접수 처리를 수행한다. 지자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동주민센터 직원들이 주관하며 상황이 많이 안좋을 경우 청 직원들까지 동원한다. 항상 비와 눈, 태풍은 업무시간 외에 온다는 공무원들의 우스갯소리가 있듯 내가 일하던 몇 년간 업무시간 중에 우리 기관에서 큰 일이 일어난 경우는 없었다.


   보통의 비상대기라 함은, 근무 인원이 없는 평일 오후6시 이후 혹은 주말 동안에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업무시간 외 근무를 서는 것을 뜻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는 일은 정말 '비상(시를 대비하기 위한) 대기'다. 실시간 현황을 공유받고 대기하는 것이 일인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대기는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양상을 띄었다. 무슨 일이 났을 때 대처할 인력이 많으면 수월할테니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80%이상의 경우에서는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2단계 발령이 걸리면 부서 현원의 1/4, 3단계 발령시 1/2가 근무를 해야하는 부서에 근무할 때다. 사실 풍수해로 발생할 수 있는 하나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 상황 발생했을 때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0에 가까웠다. 다른 관계기관들이 수행해야 할 일들이었다. 아무튼 2단계 발령이 났고, 일요일 오후 11시에 출근을 하게 됐다. 대체휴무의 기준은 해당일 8시간 이상 업무시간 외에 근무를 하는 것으로 다음날 아침 8시 이후에 비상이 해제되면 대체휴무를 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공노비, 공노비 하더라도 비가 잦아들었다고 새벽 4시에 갑자기 비상을 해제하는 상황은 (거의) 없기 때문에 편한 옷을 입고 사무실에 앉았다.


  한 번 상황보고를 마치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그 때 8명정도 되는 인원이 사무실에 있었고, 다들 각자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당연히 에어컨은 틀어주지 않는다. 너무 습하고 더운데 잠까지 몰려오니 잠시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


"지금 뭐하고 있는 겁니까?"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민방위복을 입은 직원과 그 뒤에 수행하러 온 듯이 보이는 직원이 우리 팀의 계장님을 보고 서있었다. 나이나 행동으로 봐서 팀장님 이상이신거 같은데 얼굴을 잘 몰라 무슨 일인가 잠자코 쳐다보았다. 계장님은 근무서고 있는거 보이지 않느냐며, 누군데 새벽에 남의 사무실에 와서 이러시는 거냐 물었고 돌아온 답이 놀라웠다. 부구청장이었다! 대면할 일이 많지 않아 몰랐던 것이다.


  부서에 인원이 여럿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꼬박 밤을 새울 필요는 없다. 그 때도 깨어있는 직원이 있었고 보통 비상상황이 발생 시 행정전화로 연락이 오기 때문에 새벽시간동안 대기할 때는 돌아가면서 자기도 한다. 하물며 군대 불침번도 다들 잘 때 경계근무를 서는 것인데, 공무원들도 비상대기를 설 때 돌아가면서 의자위에 앉아 새벽시간에 잠시 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구청장은 갑질이 심한 것으로 기사까지 날 정도의 문제인물이었고, 결국 전 부서가 과장이상 간부급만 모여있는 단톡방에 사무실에 근무하는 인원 전원이 정위치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진을 찍어 30분 내로 올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우리과의 과장은 근무 순번이 아니었고, 옆 과 과장은 대기중이었으나 해당 과의 과장이 직접 올려야한다는 조건을 달았기에 새벽 4시에 과장을 깨우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했다. 7명이 모두 정위치에 앉아 있는 장면을 찍어야 하니 막내인 나는 의자에 올라가 팔을 있는대로 쭉 뻗고 사진을 찍어 과장에게 전송했고 과장이 그 사진을 간부 단톡에 올림으로서 사건은 일단락 됐다.


  비가 많이 오기는 했지만 큰 사건은 발생하지 않아 월요일 오전 퇴근했고, 화요일에 출근해 퇴근을 하지못했다. 또 밤을 샜어야 했기 때문이다. 수요일 오전에 퇴근했고 목요일에 출근해서는 또 밤을 샜다.. 물론 몇 번이나 반복해 말했듯 하는 일은 그저 '대기'다. 밤을 새고 나면 다음 날은 집에서 쉰다고 해도 꼬박 잠을 잘 수밖에 없다. 일어나면 오후 늦은 시간이고 또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자야한다. 일은 줄어들지 않는다. 본연의 업무는 그대로 있는 채로 비상대기 업무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새벽에 대기하면서 일을 하면 되지 않냐는 말도 일리는 있으나 나처럼 시작이 주말이 아닌 경우, 풀근무를 서고 나서 밤을 새게 되므로 쉽지 않다.   


  이 외에도 말하자면 끝도 없이 많다. 큰 태풍이 온다고 아침 7시부터 사람을 부르더니, 태풍이 아주 약하게 지나갔는데도 밤10시까지 우리 사무실도 아닌 동주민센터 쇼파에서 하염없는 대기를 서기도 했으며 친한 동료직원은 밤 10시에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버스를 타고 오다가 도로가 물에 잠겨 집과 회사의 중간지점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고립되기도 했다. 그나마 나는 인사교류, 발령 등으로 운이 좋아 제설에는 불려나간 적이 없지만, 친한 동료들은 눈이 많이 왔다는 이유로 밤 늦게 출근을 했는데 다음날 근무 인원이 부족하자 누구는 퇴근하고 누구는 남아있기 애매하다며 아무도 퇴근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와 그대로 정상 근무를 하게 된 경험도 있다. 밤 10시쯤 출근해서 다음날 오후6시에 퇴근한 것이다.


  일부 부서들은 폭염과 한파에도 밤샘대기를 하며, 그 주기는 빠르게 돌아온다. 지자체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원의 1/4만 대기를 해도 비가 많이온다면 1주일 안에 또다시 차례가 돌아오기 떄문이다. 더불어 미취학 아동자녀가 있는 부모, 임산부, 나이많은 직원 등은 부서 상황에 따라 빼는 경우가 많아 젊은 미혼 직원들은 꼼짝 없이 비상대기에 시달린다. 분명 비상대기는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 형태가 개선될 필요는 있어보인다. 물론 공무원에게는 효율보다 명분과 면피가 더 중요하므로 개선될 리는 없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절대 발전이 불가능한 이 조직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직은 재직 중이지만, 이제는 지방직에서 벗어나 국가직 소속이므로 그런 류의 비상대기는 없다. 국가직으로 옮긴 지 반 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비행기가 결항될 정도로 거센 비가 내리는 사실을 의식도 안하고 있었던 것이 새삼 놀라웠다. 지긋지긋했던 일에서 해방되었다는 자각과 함께 평생 나와 함께 갈거라 생각했던 부분이 떨어져나갔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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