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회상
퇴직했다고 해서 하루가 무미건조하고 색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소소한 사건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처리해야 할 일도 줄을 잇습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에요.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이 있고, 일주일에 한 번인 서예 강습도 있습니다. 오후에는 약을 타러 병원에 들러야 하고 머리 염색도 예약되어 있거든요. 빨강과 파랑이 뒤섞인 자홍색을 닮은 하루라고나 할까요?
틈틈이 읽을거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재에 들렀다가 저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는 책 한 권과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독일인의 사랑』이 책장 귀퉁이에서 소박한 빛을 내고 있지 뭡니까? 두께가 얇아 휴대하기 좋고 여러 번 읽어 큰 줄기의 흐름은 알고 있으니, 중간에 읽다가 멈추어도 다시 이어가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습니다.
도서관 입구에 놓인 자동반납기에 대출했던 책을 하나씩 집어넣고 2층의 종합 자료실로 올라갔습니다. 문학서고 뒤쪽으로 키가 높고 탄탄한 탁자가 벽을 따라 길게 설치되어 있는데, 창밖으로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이 보기 좋아 창문 앞자리는 늘 인기가 많습니다. 큼지막한 헤드폰을 끼고 강의를 듣는 젊은 친구 옆, 한 자리 건너에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습관처럼 제일 마지막 장의 판권을 펼쳤다가 그만, 발행일에 시선이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영화필름처럼 지나가는 1990년부터 책과 이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 봅니다. 열여섯 즈음, 이 책을 처음 소개해 준 사람, 때가 탄 찍찍이 지갑을 들고 계산대에 멀쑥하게 서 있던 제 모습, 파란색이 선명했던 서점 간판, 이삿짐 속에서 이 책을 꺼내 책장에 꽂던 방의 공기, 그리고 책을 손에 든 서른과 마흔의 제 모습이 재빠르게 스쳐갑니다.
『독일인의 사랑』이 서재에서 빛을 내던 이유는 지난 저의 온기가 오롯이 배어 있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니 종이 색이 가을 나뭇잎처럼 변하고 책등도 많이 닳아 해졌네요.
유년 시절은 그 나름대로 신비와 경이를 가지는 법이다. 그러나 누가 그 비밀과 신비를 표현하고 그 뜻을 풀어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모두 그 신비로운 경이의 숲을 두루 거치며 지나왔다. 우리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그 행복한 황홀경 속에서 눈을 떴으며 생의 아름다운 실체가 우리의 영혼을 밀물처럼 차올랐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이며,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때 온 세상은 우리의 것이었고, 우리 또한 온 세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정지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삶이었다. 마음속은 봄하늘처럼 맑았고 제비꽃 향기처럼 신선했으며, 주일날 아침처럼 조용하고 숭고했다.
그런데 무엇이 어린 시절의 이러한 평화를 깨뜨렸는가? 어떻게 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상태가 종말을 고하게 된단 말인가? 무엇이 그러한 유일하고 완전한 조화가 지닌 행복으로부터 우리를 내몰아 어두운 삶 속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도록 하는가?
- 막스 뮐러 저/이경숙 역(1990), 독일인의 사랑, 도서출판 그대로, p.11. -
『독일인의 사랑』의 첫 문단입니다. 어렵지 않으세요?
네, 이 책은 쉬이 속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니 십 대의 제가 온전히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 책을 읽었을 리가 없죠.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다만, 어려운 구절을 잘 참고 책장을 넘기면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속에 발을 들인 것처럼 청명한 세계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름다운 단어들이 살랑살랑 떠다니다가 격정적인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기도 해서,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아쉬워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누구는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로 기억할 것이고, 다른 누구는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철학적 사유를 발견할지도 모르며, 또 어떤 이는 그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과 신 앞에 선 영혼의 떨림 같은 것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독일인의 사랑』이 이처럼 다양한 시선으로 읽히는 이유는 읽는 이의 마음을 투영해 각기 다른 오묘한 빛을 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덮고 나면 한 편의 사랑 이야기를 읽은 듯하면서도, 동시에 인간과 삶에 대한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저자 막스 뮐러는 자백처럼 “나의 상념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한 사랑의 불가사의한 수수께끼 앞에서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다.”라며 마지막 문장을 장식합니다.
책장을 덮고도 한동안은 언어의 울림에 눌려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요. 다 읽은 책 위에 손을 올리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네 번째 회상 속, 마리아 공녀가 주인공에게 멘델스존의 이중주곡을 들려달라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멘델스존 피아노 이중주’라고 검색하니, 멘델스존이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감명받아 피아노 이중주 서곡을 완성했다는 정보가 나오네요. 이 곡인지 다른 곡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들어보기로 합니다.
도서관 누리집의 디지털자료에 접속하면 ‘뮤직 라이브러리’라는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찾은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앨범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서야 자리에서 겨우 일어납니다. 오늘은 도서관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자홍빛 같은 날이거든요. 무선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위안받으며 천천히 도서관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