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알

- 처음이라는 설렘

by 블러드 피치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 붕어빵과 국화빵을 파는 작은 포장마차가 있어요. 지나칠 때마다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요. 팥앙금, 슈크림이 따뜻하게 녹아있을 붕어빵 가게 앞에 결국 멈춰 서고 맙니다. 막 나와 손끝이 데일 것처럼 뜨거운 붕어빵을 참지 못하고 입에 물었습니다. 이게 뭐라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네요.


처음 붕어빵을 먹었던 게 언제였더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제가 일본어 원서로 처음 읽었던 책이 떠올랐습니다. 혹시나 싶어 도서관 컴퓨터로 자료 검색을 해보니 이제 더 이상 서고에서 바로 찾을 수가 없네요. 자료 번호를 출력하니 보존 서고에 있는 자료라 사서에게 문의하라고 합니다. 다행히 대출이 가능한 자료여서 바로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흙먼지로 뿌옇던 길에 이윽고 은빛 비단실 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중략)

그렇게 한바탕씩 비가 내릴 때마다 공기는 깨끗이 닦여서 투명해지고, 이윽고 구름이 걷히고 해가 얼굴을 내밀면 주위는 온통 황금 가루를 흩뿌린 것처럼 빛났다.

- 무라야마 유카 저/양윤옥 역(2006), 천사의 알, 소담출판사,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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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겨울, 삿포로의 어느 조그만 동네 서점에서 처음으로 샀던 문고본 소설이었습니다. 몇 페이지 남겨두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던 기억과 술술 읽기에는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 겨우 완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라야마 유카의 『천사의 알』이라는 책인데요. 제가 일본에서 산 문고본이 2000년에 20쇄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에 번역이 되었네요. 아쉽게도 일본에서 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 한듯합니다. 조금은 유감이네요.


‘첫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우리를 설레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그랬듯 속만 태우다 이루어지지 않거나, 처음 겪는 감정선에 불완전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더 아련하고 복잡한 감정에 휘둘리고 맙니다. 『천사의 알』 속 인물들은 조금 더 현실적이어서 좋았습니다. 서툰 사랑 앞에서 망설이고, 상처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내딛는 모습을 보며, ‘제발 해피엔딩이기를’ 하며 가슴을 졸였던 20대의 제가 겹쳐졌습니다. 『천사의 알』에 녹아든 그 허무함과 상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삿포로의 겨울은 정말 추웠어요.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고요하게 눈이 내리는 조그만 기숙사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문고본과 씨름하던 그때가 이 책 하나로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무라야마 유카의 『천사의 알』은 그녀의 첫 작품이기도 해서인지 풋풋함이 녹아있어요. 첫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간질간질하기도 합니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의미가 해석의 여지는 있지만, 어느 날 아무런 징조도 없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우리의 오늘, 우리의 사랑이 고귀한 것인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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