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의 나라

소설의 허구와 현실의 경계

by 블러드 피치

갑자기 도서관에서 미납 도서가 있다는 문자 알림을 받았습니다. 평화롭던 오후 시간이 돌연 긴장감으로 시퍼렇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제날짜에 반납했는데 없다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요. 어슬렁거리던 도서관을 나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서재, 소파, 식탁까지 뒤져봐도 흔적이 없습니다. 혹시 반납하러 들고 갔던 가방 안에 빠졌는지 가방 속을 들여다봐도 없네요. 난감합니다. 차 안에 흘렸을까? 스마트폰 조명을 켜고 좌석 밑까지 확인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발을 동동거리며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 사서에게 분명하게 반납했다고 사정을 얘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숨을 몰아쉬며 책을 반납하던 날을 차분하게 떠올려봅니다. 생각해 보니 그날 저는 도서관 두 곳에 책을 반납했고, 모두 자동 반납기에서 처리한 후, 옆에 놓인 반납 도서대에 올려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도서관마다 미묘하게 소장 도서가 달라서 한 곳은 교육도서관, 또 다른 곳은 시립도서관이었습니다.


‘설마’ 하며 대출했던 도서관 서가를 살펴보니 제가 교육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시립도서관에 꽂혀 있지 뭐예요. 당연히 기계가 인식을 못 했겠죠. 반납 도서대에 다른 도서관 책이 있는데 도서관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누구를 책망하겠습니까? 가슴을 쓸어내리며 책의 행방을 찾았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나이 탓을 하며 서 있는 제모습이 괜히 안쓰러웠습니다.


나는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과 같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싶었다. 맹목적으로 일본을 매도하는 공허한 감정풀이 대신 성실한 자기 성찰과 노력이 있을 때만이 우리에게 발전이 올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선량하고 성실한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과도 역사를 같이 생각해 보고 싶다. 군국주의자들의 불순한 음모가 게재된 허구의 역사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이웃한 두 나라는 진정한 우호적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명(2003), 가즈오의 나라, 해냄, p.7 <작가의 말>


학창 시절에 배운 역사는 시험공부용이어서 연표 외우기에 급급했었는데요. 처음으로 역사에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한 작가가 바로 김진명입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이어 『가즈오의 나라』까지 어두운 역사의 뒷골목을 걷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가 저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연구생으로 시작해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오래 몸담았던 곳이라, 자연스럽게 ‘우리 학교’라고 가장 많이 부른 곳이 국립 나라여자대학교입니다.

운명이었을까요? 『가즈오의 나라』 초판본에서 주인공이 중요한 자료를 찾아낸 곳이 우리 학교 도서관 지하였습니다. 유학 중에도 그 사실이 떠올라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졸리거나 하면 지하 도서관에도 내려가곤 했었는데요. 오래된 책들이 많아 사람이 드물고, 지하 특유의 습기와 냉기가 뒤섞여 서늘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즈오의 나라』는 초판이 1995년인데, 2003년 개정판에서는 나라여자대학 도서관 장면이 사라져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2010년 다시 개정판이 나오면서 제목이 『몽유도원』으로 바뀌었네요. 일본에서 <몽유도원도> 반환이 결정되며 책의 내용도 그것에 맞게 조정되었나 봅니다. 이렇게 여러 번 개정할 만큼 『가즈오의 나라』는 여러 쟁점이 되는 역사관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광개토대왕비’를 둘러싼 해석과 음모론, 살인 사건, 정치적 갈등, 북한 내부의 쿠데타까지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읽을 만큼 흡인력이 대단한 작품입니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늘 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역사적 배경을 뒷받침할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다시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치밀하게 녹여내는 필력에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역사와 정치, 국제 관계라는 무거운 주제를 긴장감 넘치는 서사로 풀어내며 독자를 그의 품속에서 놓아주지 않거든요.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습니다. 이처럼 『가즈오의 나라』가 여러 차례의 개정에도 변함없이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질문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다음엔 도서관에 가서 『몽유도원』을 빌려올 예정입니다. 『몽유도원』은 소설의 허구와 현실의 경계 그 어디쯤으로 저를 데려다 놓을까요. 설렘이 가득한 마음은 벌써 도서관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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