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도서관이라는 평행 세계

by 블러드 피치

1990년대 초반 학번인 저는 취루탄 냄새를 맡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1980년대 학번들만큼 총학생회 활동이 활발하지도 않았고요. 역광장을 둘러싼 데모부대와 화약 냄새에 먼 길을 돌아 집으로 갔던 기억은 겨우 한두 번뿐입니다. 1990년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민주화를 외치던 1980년대 학번과 소비문화를 주도하던 1990년대 후반 학번에 끼인 어정쩡한 세대였죠. 교정에는 여전히 건물벽 하나를 덮은 붉은 대자보와 같은 선배들의 잔향이 짙게 남아 있었지만, 동기들의 관심은 성적, 토익 그리고 취업 설명회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을 마냥 밝고 찬란하게 기억하기에는 제 사춘기가 길었나 봅니다. 항상 불안과 우울, 예민함이 폭발하기 직전이었거든요. 진로에 대한 방향도 찾지 못한 채 여러모로 과도기였던 그런 시기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났습니다. 처음 『상실의 시대』를 읽고 깊이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 버티며 살아가는 삶의 무게감이 마치 그 시절 제가 잃어버린 채 찾지 못하는 그 무언가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무언가를 하루키에게서 발견하려고 했죠. 『댄스 댄스 댄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양을 둘러싼 모험』과 같은 책을 대학 도서관 구석에 틀어박혀 읽었습니다.


하루키의 세계에는 현실의 틈새에서 살짝 비틀어진 공간이 존재했습니다.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비대칭 거울과 같은 세계였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저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하루키가 그려놓은 환상의 세계가 정말 좋았거든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를 추천합니다. 아마도 제가 선물로 가장 많이 한 책 중 하나가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 같거든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트가 넘치고,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가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어떨 때는 하루키가 주인공이었다가 또 어떨 때는 미즈마루가 주인공이 됩니다. 오늘은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 이 책이 눈에 띄어 집어 들었습니다.



그들은 나의 서재를 스파게티 공장이라 부른다. ‘그들’이란 양 사나이와 예쁜 쌍둥이 소녀다. 스파게티 공장이란 말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 끓는 물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소금을 뿌리거나, 타이머를 작동시키거나, 그런 정도다.

내가 원고를 쓰고 있는데 양 사나이가 두 귀를 팔락거리며 다가온다.

“있잖아, 우린 아무래도 그 문장이 마음에 안 들어.”

“그래?” 나는 말한다.

“어쩐지 주제넘은 것 같고, 유익한 게 없잖아.”

“흐음.” 나는 말한다. 나로서는 꽤나 고생해서 쓴 문장이다.

“소금을 좀 많이 뿌린 거지.” 쌍둥이 중 208이 말한다.

“새로 만들자.” 209가 말한다.

“우리도 거들게.” 양 사나이가 말한다.

아니, 됐어. 양 사나이가 도와주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 만다.

“넌 맥주를 가져오고.” 나는 208에게 말한다. 그리고 209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넌 연필을 세 자루 깎아둬.”

209가 과일칼로 깔짝깔짝 연필을 깎는 동안 나는 맥주를 마신다. 양 사나이는 말린 누에콩을 우물거리고 있다.

끝이 뾰족한 연필 세 자루가 가지런히 놓이자 나는 짝 하고 손뼉을 쳐 셋 모두를 서재에서 내쫓는다. 일이다, 일.

무라카미 하루키 저/안자이 미즈마루 그림/김난주 역, 2012,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문학동네, pp.70-71.


「스파게티 공장의 비밀」이라는 글을 읽으면, 표정에 큰 변화가 없는 하루키가 고민하며 서재에 앉아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리고 저도 생각하죠. ‘내 서재에 사는 게으름뱅이 악마도 손뼉을 쳐 내쫓아야겠다!’라고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에 실린 「마이 스니커 스토리」도 좋아하는 글 중 하나입니다. 무척 진지하게 읽어나가다가 하루키에게 호되게 당하거든요. 하루키가 마지막으로 ‘죄송’하다는 사과까지 하는 바람에 너그럽게 용서하기는 하지만, 아주 즐거운 경험입니다. 제가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일생 저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최애 작가가 있다는 사실은 무척 행복한 일입니다. 늦깎이 사춘기에는 『상실의 시대』, 병가로 침대에 누워지내며 『1Q84』를, 중년이 되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만났습니다. 궁금해지기 전에 틈틈이 근황을 전해주는 에세이집은 지친 일상의 오아시스고요.


도쿄 여행을 하며 와세다대학 안에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를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팬으로서는 설렐 수밖에요. 유리와 나무가 조화를 이룬 건물 내부는 마치 하루키의 소설 속 한 장면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듯했습니다.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과 고요함 그리고 익숙한 재즈 선율. 문득, ‘이곳은 하루키의 세계로 통하는 하나의 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현실에서 평행 세계로 넘어온 듯한 감각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작 작가입니다. 단편, 장편, 에세이, 번역서까지 그가 써낸 글들은 서로 다른 형식을 띠고 있지만, 모두 하루키 특유의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의 벽 하나를 장식한 작품 목록을 바라보니, 아직 못 읽은 책도 많고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은 책도 있습니다. 퇴직하고 이제는 시간에 여유가 생겼으니, 정기적으로 ‘하루키 주간’ 이런 거라도 하나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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