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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r 30. 2016

바오밥 나무

좋은 씨앗과 나쁜 씨앗

나는, 별이니 출발이니 여행이니 하는 데 대해서 매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아주 천천히, 무엇을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우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사흘째 되던 날, 바오밥나무(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줄기 둘레가 20미터를 넘는 나무)의 비극도 이런 식으로 알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양의 덕택이었다. 왜냐하면 어린 왕자가 무슨 중대한 의문이나 생긴 듯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 게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아! 그럼 잘 됐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 사실이 왜 그다지도 중요한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왕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바오밥나무도 먹어?"
나는 어린 왕자에게 바오밥나무는 작은 나무가 아니라 성당만큼이나 커다란 나무이고, 코끼리 떼를 몰고
간다 하더라도 바오밥나무 한 그루도 다 먹어치우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코끼리 떼라는 말에 어린 왕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들을 모두 무등을 태워야겠네......."
그런데 그가 현명하게도 이런 말을 했다.
"바오밥나무도 커다랗게 자라기 전에는 작은 나무였지?"
"물론이지! 그렇지만 어째서 네 양이 작은 바오밥나무를 먹었으면 하는 거지?"
"아이 참!"
그는 말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래서 나 혼자 이 수수께끼를 푸느라고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어린 왕자의 별에도 다른 별이나 마찬가지로 좋은 풀과 나쁜 풀이 있었다.
따라서 좋은 풀들의 좋은 씨들과 나쁜 풀들의 나쁜 씨들이 있었다. 그러나 씨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땅속에서 몰래 잠들어 있다가 그 중의 하나가 갑작스레 잠에서 깨어나고 싶어진다. 그러면 그것은 기지개를 켜고 우선 아무 힘도 없는 예쁘고 조그만 싹을 해를 향해서 머리를 조심조심 내민다. 그것이 무나 장미나무의 싹이라면 마음대로 자라게 내버려 둘 수가 있다. 그러나 나쁜 풀일 때에는 그것이 나쁜 풀이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게 되자마자 곧 뽑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어린 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오밥나무 씨였다. 그 별의 땅에는 바오밥나무 씨투성이였다.
그런데 바오밥나무는 자칫 늦게 손을 쓰면 그땐 정말 처치할 수 없게 된다. 그놈은 별 전체를 휩싸버리고
뿌리로 여기저기 구멍을 파놓는다. 그리고 별이 너무 작기 때문에,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터지고 만다. 어린 왕자는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그건 규율 문제야. 아침에 몸단장을 하고 별을 잘 손질해 주어야만 해. 장미나무와 구별할 수 있게 되면 곧 바오밥나무를 뽑아 버리도록 규칙적으로 힘써야 해. 아주 어릴 때에는 바오밥나무와 장미나무가 아주 비슷하니까. 그건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쉬운 일이기도 하지."
또 하루는 나에게 예쁜 그림을 하나 정성껏 그려서 우리 땅에 사는 어린이들의 머릿속에 이런 사정을 경고해 주라고 했다.
"그 어린이들이 어느 때고 여행을 하면 필요할 거야. 오늘 할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게 괜찮을 때도 있지만, 바오밥나무의 경우에는 큰 사고야. 난 게으름뱅이가 살고 있는 어느 별을 알고 있었어. 그는 작은 나무 세 그루를 무심히 내버려 두었었지....."
그래서 어린 왕자가 일러 주는 대로 나는 그 별을 그렸다. 나는 윤리 선생 티를 내기는 싫다. 그러나 바오밥
나무의 위험이 너무 알려져 있지 않고, 또 기를 잘못 들어 어떤 소혹성에 발을 들여놓을 사람이 크나큰 위험을 당하겠기에 난생 처음으로 나는 그런 조심성을 버리고 이렇게 말하려 한다.
"어린이들여! 바오밥나무를 조심하라!"
내가 이 그림을 이처럼 정성껏 그린 것은, 나와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알지 못하여 당하고 있는 위험을 내 친구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내가 준 교훈이 그만한 가치는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하리라.
이 책에는 왜 바오밥나무만큼 굉장한 다른 그림이 없을까? 그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려 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바오밥나무를 그릴 때에는 위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건 규율 문제야. 아침에 몸단장을 하고 별을 잘 손질해 주어야만 해.
장미나무와 구별할 수 있게 되면  곧 바오밥나무를
뽑아 버리도록 규칙적으로 힘써야 해.
아주 어릴 때에는 바오밥나무와 장미나무가 아주 비슷하니까.


그건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쉬운 일이기도 하지."





우리들 마음속에는.

바오밥 나무 씨앗과 장미 나무 씨앗을 하나씩 품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로 구분이 되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적어도 선과 악을 구분해낼 수 있는 신이 아니기에.

그 두개의 씨앗의 주인인 나는 그 두 나무의 씨앗을 적절하게 키워내고

관리하는 데에 정성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그 방법은 가만히 내 마음속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미나무 마음을 더 잘 키워낼 수 있도록.

바오밥나무 마음의 자람을 더 신경 쓰도록.

나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는 그런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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