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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r 24. 2016

B 612호

누구나 다 친구를 가져보는 것은 아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데는 꽤 오랜 시일이 걸렸다. 어린왕자는 나한테는 여러가지를 물어 보면서도
내가 묻는 말은 조금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가 무심코 내뱉는 말로 차츰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그가 내 비행기를 처음 보았을 때 (내 비행기는 그리지 않으련다. 그건 내가 그리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그림이니까) 그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물건은 대체 뭐야?"
  "이건 물건이 아니라 날아다는 것이란다. 비행기라고 하는거야, 비행기."
나는 내가 날아다닌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랬더니 어린 왕자가 소리쳤다.
  "뭐! 그럼 아저씨는 하늘에서 떨어졌어?"
  "응."
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야! 그것 참 재미있다......."
그러고는 어린 왕자는 유쾌하게 깔깔거리며 웃었다.그것이 몹시도 내 비위를 건드렸다. 나는 사람들이 내 불행을 비웃는 것이 싫다. 어린왕자는 말을 계속했다.
  "그럼 아저씨도 하늘에서 왔잖아! 아저씬 어느 별에서 왔어?"
나는 그의 신비로운 존재를 알아내는 데 한줄기 서광이 비침을 깨닫고 황급히 물었다.
  "그럼 너는 다른 별에서 왔니?"
그러나 그는 내 말에는 대답도 없이 비행기를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런 걸 타고 그리 멀리서 오진 못했겠군......."
그러더니 한참 동안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가 내가 그려준 양의 그림을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보물처럼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다른 별들이라는, 그가 슬쩍 내비친 비밀에 내가 얼마나 호기심으로 몸이 달았겠는가를 여러분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좀더 알아 보려고 애를 썼다.
  "얘야, 넌 어디서 왔니? 네 집은 어디냐? 내 양을 어디로 가져가려고 그러니?"
아직도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린 왕자는 이런 대답을 했다.
  "아저씨가 준 상자 말이야, 그게 밤에는 양의 집이 될테니까 됐어."
  "그렇고말고. 그리고 네가 얌전하게 굴면 낮 동안에 양을 메둘 고삐도 줄 테다. 말뚝도 주고."
이 제안이 어린 왕자의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양을 매둬? 참 이상한 생각인데!"
 "하지만 매두지 않으면 아무데로나 가버리고 또 길을 잃어버릴 텐데......"
그랬더니 이 친구는 다시 한 번 깔깔 웃었다.
  "아니, 어디로 간다는 거야?"
  "어디든지 곧장 앞으로......"
그러자 어린 왕자는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괜찮아,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으니까!"
그리고 조금 서글픈 생각이 들었는지 덧붙여 말했다.
  "앞으로 곧장 간다 해도 그리 멀리 갈 수가 없어......"
이렇게 해서 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이 집 한 채보다 조금 클까말까 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구, 목성, 화성, 금성같이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큰 떠돌이별들 외에도 다른 떠돌이별이 수백 개나 더 있으며, 어떤 것은 너무 작아서 망원경으로도 관찰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천문학자가 그런 별을 하나 발견하면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준다.
예를 들면 '소혹성 3251호' 하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나는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이 소혹성 B 612호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소혹성은 1909년 터키 천문학자에 의해 딱 한 번 망원경에 잡힌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그 천문학자는 국제 천문학회에서 자기의 발견에 대해 훌륭한 증명을 했었다. 그러나 그가 터키 고유의 의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른들이란 모두 이런 식이다.
터키의 어떤 독재자가 국민들에게 양복입기를 명하고, 거역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강요한 것은 소혹성 B 612호의 명예를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이 천문학자는 1920년에 멋진 양복을 입고 다시 증명을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모두들 그의 말을 믿었다.
소혹성 B 612호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를 하고, 그 번호까지 알려준 것은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어른들은 '그 친구의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장난을 좋아하는냐? 나비를 수집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냐? 그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하는 것이 어른들이 묻는 말이다. 그 대답을 듣고서야 그 친구를 아는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하지 못한다. '10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다.'고 해야 그들은 '참으로 훌륭하구나!' 하고 감탄한다. 이와 같이 '어린 왕자가 무척 아름다웠고, 잘 웃었고, 양을 가지고 싶어했다는 것이 그가 이 세상에 있었던 증거가 된다. 어떤 사람이 양을 가지고 싶어하면 그건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증거가 된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우리들을 어린 아이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나온 별은 소혹 B612호이다.'라고 하면 그들은 우리의 말을 알아들을 것이고, 또 여러 가지 질문으로 우리에게 귀찮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그런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을 항상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을 이해하는 우리들은 당연히 숫자 같은 건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동화 같은 식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옛날에 자기 몸보다 좀더 클까말까 한 별에 사는 어린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 왕자는 친구가그리웠습니다......" 인생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훨씬 더 진실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이 책을 건성으로 읽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내 친구가 그의 양과 함께 떠나가 버린 지도 벌써 여섯 해가 된다. 지금 여기에다 그의 모습을 그려 보려는 것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니까. 누구나 다 친구를 가져보는 것은 아니다. 그를 잊는다면 나도 숫자밖에는 흥미가 없는 어른들처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림물감 상자와 연필들을 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림이라고는 여섯 살 때 속이 들여다보이는 보아구렁이밖에 그려본 적이 없는 내가, 이 나이에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노릇이 아닐수 없다. 물론 될 수 있는 대로 실물에 가까운 초상화로 그려보려고 노력은 하겠다. 그러나 꼭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떤 그림은 괜찮은데 또 어떤 그림은 닮지를 않았다. 키도 조금 틀린다. 여기는 어린 왕자가 너무 크고, 저기는 너무 작다. 또 옷 빛깔에 대해서도 망설여진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더듬거려 본다. 끝으로 나는 더 중요한 어떤 부분을 잘못 그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용서해 주어야 한다. 내 친구가 도무지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나도 자기 같은 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불행히도 상자 속에 든 양을 꿰뚫어 보지는 못한다. 나도 아마 좀 어른들처럼 된 모양이다. 아마 늙었나 모다.





누구나 다 친구를 가져보는 것은 아니다.
그를 잊는다면 나도 숫자밖에는 흥미가 없는 어른들처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사는 어른이기보다 어린왕자의 친구로 남아있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비행사 자신도 어린왕자와 같은 시절을 지나쳐 왔으니까.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원치 않아도 어느새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숫자 뒤에 있는 진실을 들여다보지 못한채.

숫자에만 연연하게 되는 속물이 되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누구나 다 친구를 가져보는 것은 아니다.

때론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살다가도 외로움을 느끼게 될때가 종종 있다.

나만 연극을 빠져나온 공기 빠진 풍선인형처럼

객석에서 사람들 속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낀다.

그런 사람들 모습을 지켜볼때면,

사람 사는 것이 각자의 소행성에서 각자의 방식대로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울때에는, 차가운 현실과 직면해서 희석되지 못하는 내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외로움은 나의 어린왕자와 같은 마음속 흔적과 어른이 되려고 하는 내모습의 충돌이 아닐까?

그럴때, 내 마음 알아주는 또 다른 친구를 가져 본다는 것은 정말,

어느 것보다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것이 아닐까?

그런 친구를 잠시라도 만났다면, 그 마음을 잊지 않도록...

나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그 어린왕자의 그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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