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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oblanc Jul 07. 2021

암 치료로 가는 여행中 (1)

지금 당신은 어디쯤에 있나요?

"예약은 두세 달 뒤에나 가능하세요"

"네?! 그렇게나 밀렸나요?"

"네 환자가 많습니다..... 아 잠시만요. 아직 만 35살이 아니시네요. 만 33살이시면... 잠시만요 다음 주 정도에 가능합니다. 젊은 유방암센터로 통합진료를 보게 됩니다. "


좀 전에는 안된다면서 지금은 된다고 한다.


그렇다 난 젊은 유방암 환자였다.


젊은 암환자는 암세포의 증식 속도가 빠르고 위험하기에 이렇게나 빨리 예약을 잡아준다.



2019년 4월 26일 암 진단을 받았다

진단받은 병원에서 채취한 암 슬라이스 표본 몇 개와 진단서 등을 챙긴 뒤, 5월 7일 A병원에서 암 치료를  위한 검사를 받게 되었다. 젊은 유방암 환자는 종양내과, 유방외과, 성형외과 등 바로바로 협진이 가능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인가? 그나마 나이가 젊다고 빨리 치료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해의 5월은 바빴다.


홍콩에서 놀러 온 친구를 만나야 했고,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와 데이트를 했으며, 회사 사람들과 마지막 회식을 즐겼고, 가족끼리 제주도에도 놀러 갔다.

모든 것이 항암을 하기  2~3주 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처음 종양내과 선생님을 배정받은 날, 항암을 한 주만 미뤄달라고 부탁드렸다.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좋은데, 알겠어요 5월 24일 날 항암을 시작할게요."


내가 미룬 이유는 가족들과 계획한 제주도 여행 때문이었다.

물론 암 진단을 받기 전부터 잡은 계획이었고, 개와 함께 하는 첫 비행(飛行)이었다.

전적으로 '개' 위주의 여행이 컨셉이었고 모든 계획은 강아지가 출입이 가능한 곳으로 정하였다.

내가 가족들에게 권유했으며 여행 스케줄도 짜두었다.


이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 아니어도 갈 수 있지만,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체력이 좋을 때(항암 하기 전에) 다녀온 마지막 여행이기도 하다.

(확실히 항암 전과 후의 체력과 피로도는 이전과 다르다, 그 피로감을 예로 들자면 항상 야근하고 온 느낌이다.)

제주도에서 즐거운 한 때 (2019.05)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항암 전에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아마 진단받고 정신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 여행이 치료받는 동안 힘이 되었고 추억이 되었다.

물론 항암 후에도 난 동생과 부산여행도 다녀왔다. 4번의 항암 후, 암 제거 수술 전에 다녀왔었다.

해운대에서(2019.08)


불행히도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암환자가 어디든 선뜻 나갈 수가 없으니 더 안타깝고 슬퍼진다.

내가 진료받았을 때만 해도 코로나가 오기 전이였고, 외출할 때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만 커피숍도 다녔고 맛집도 다녔다. 하지만 요즘 암을 진단받은 환자는 밖에서 나가기 꺼려질 것이다.

항암을 하게 되면 호중구 수치가 낮아지고 면역력이 떨어지기에 감염의 위험이 커지는데, 엎친데 덮친 격 '코로나'라는 놈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그 맘을 더 잘 알기에 안타깝고 아쉽다.



아무튼 난 첫 항암을 목전에 두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고 친구들도 만나고 데이트도 즐겼으며 술도 먹었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항암을 조금만... 조금만... 아니 쭈욱 미루고 싶었다.

나는 아직 내 몸의 암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말기 암환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하였고 5가지 단계가 있다고 밝혔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1. 부정의 단계 - "뭔가 잘못됐을 거야."
2. 분노의 단계 - "왜 하필 나야 내가 뭘 잘 몰했는데..!!"
3. 타협의 단계 - "열심히 살 테니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4. 우울의 단계 - "결국 죽겠지 이럴 줄 알았더라면.."
5. 수용의 단계 - "다 끝났구나. 이렇게 죽음을 마주하자."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나는 암을 인정하지 않았다.

암 진단 결과를 기다릴 때도 아닐 거라 굳게 믿었고 부정하였다.

암 진단 후에도 평소처럼 행동하였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항암에 들어갈 무렵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꼭 내 몸 안에 암이 없다는 듯 생각하고 행동했다.


분노의 단계는 2~3번의 항암을 진행하고 나서 전 남자 친구를 회상할 때의 일이다.

그때 동생에게 나의 분노를 표현한 적이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그 쓰레기 같은 xx 때문이야!! "

머리는 빠지고 생수 한 모금만 마셔도 속이 느글거렸다. 입안은 헐고 모든 냄새에 민감해졌다.

난 요양병원에 갇혀 있는데 그놈은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가 달아올랐다.


타협과 수용의 단계는 어느 정도 암 치료가 진행이 되면서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먹으라면 먹고 치료받으라면 받고 전적으로 의사와 간호사의 지시를 따른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울의 단계는 암 치료하면서 별로 느껴본 적이 없던 감정이다.

매번 항암 주사를 맞은 뒤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동병상련의 사람들과 같이 있다 보니 내 상황을 잊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 죽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의 5단계의 대상 환자들은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자들이어서 일까.

내가 느낀 바와는 다르지만 모든 상황이 꼭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더라고 5가지 단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5월의 바쁜 스케줄을 마치고 바로 그날이 왔다.

빨간 주사를 맞게 된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이왕 맞는 거 빨리 맞고 싶어 졌다.

하지만 대기 시간이 이렇게나 길다니, 나처럼 항암제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병원에는 암환자와 희귀병을 가진 이들과 중증의 병을 가진 이들의 보호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건강했을 때는 관심 밖의 장소였고 주변 인물 중에서도 이곳과 연관이 있는 인물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병원은 평생 나와 가깝게 지낼 친구가 될 운명이니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첫 항암주사는 아버지와 고모와 함께 갔다.

그 당시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첫 주사를 기다렸다.

(긴 머리보다는 짧은 머리가 탈모가 와도 충격이 덜하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잘랐다)

1차 항암은 '아드리아마이신'을 맞았는데 당일날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빨간 용액이 내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데도 별 감각이 없었다. 그냥 뭔가 코에서 싸한 느낌의 냄새가 느껴졌다.(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항암주사를 맞으신 분들은 알 것이다.)


주사를 맞고 요양병원 근처에서 마늘 오리주물럭을 먹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난 마늘 오리주물럭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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