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로 살고 친구로 살아가는 법
나에겐 두 살 터울의 언니가 한 명 있다.
딱 한 명, 우리 둘뿐.
어려서부터 내가 제일 많이 듣었던 말은 ‘귀엽다’였고, 언니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예쁘다’였다.
그에 따라 우리 둘의 팬층도 확연히 달랐다
엄마친구, 아빠친구, 동네 어른들이 나를 이뻐했다면, 언니는 또래 남자들이 아~주 좋아했다.
그 옛날 국민학교 시절, 우리는 대걸레며, 대걸레를 빠는 양동이까지 직접 들고 다니면서 청소를 했었다.
난 언니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조금만 무거운 걸 들고 다닌다 싶으면 사방에서 오빠들이 나타나 말했다.
“어우, 우리 동생 무겁겠다. 내가 들어줄게!
나 00인데 언니한테 내가 들어줬다고 꼭 말해줘!”
늘 슈퍼맨처럼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오빠들이 있어 나는 학교를 좀 편하고 또 배부르게 다니긴 했다.
집에서도 놀 사람이 언니랑 둘 뿐이니,
열 번을 싸우면 열 번을 화해해야만 했다.
함께 놀지 못하면 우리의 하루가 너무 길고 심심하니까.
누가 언니만 칭찬하기라도 하면
"나는!! 나는!!” 라며 생떼를 부렸고.
언니보다 노안인지라, 누군가 나를 언니로 착각해서 잘못 말하기라도 하면,
서럽고 억울해서 눈물까지 흘렸더랬다, 사춘기 때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와 독일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난 1의 망설임도 없이 일본어를 택했다.
언니 앞에서 잘난 척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언니가 모르는 말을 내가 먼저 할 수 있다는 건 어린 나에게 '작은 승리'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언니는 내 친구이자 경쟁자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난 사실 언니를 참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언니를 만나면 멀리서도 빛이 났다.
싸울 때도 소리만 지르다 울기부터 하는 나와 달리,
언니는 논리적이었으며 이성적이었다.
난 그런 언니가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그렇게 늘 빛이 나던 언니는 한 때 몇 해 동안,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만날 때마다 언니가 점점 빛을 잃어가는 게 보였다.
분명 우린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데도, 언니가 느껴지지 않았다.
언니가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늘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언니의 인생이 다시 블링블링 빛나기를 -
샘나도록 눈부셨던 그때의 언니로 돌아가기를 -
몇 년 후 언니는 언니의 빛을 찾았다.
다시 맘껏 언니를 샘낼 수도, 언니한테 생떼를 부릴 수도 있게 되었다.
우리가 다시 함께 웃게 되었을 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 아빠가 그랬다.
부모가 오래오래 함께해 줄 없어 자매를 만들어 준 거라고.
그러니 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재밌게 지내라고.
아빠는 인지력을 잃어가던 순간에도,
언니와 내가 변치 않고 의좋게 지내기만을 바라셨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이제 아빠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결국, 그 말은 우리에게 남긴 유언 같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바람대로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단단히 지켜주며 살아간다.
나의 '처음'부터 시작된 관계.
부모를 공유하는 사이.
나의 과거-현재-미래, 그 어디에도 공백 없이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끈끈해진다.
이제, 나도 아빠의 그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고 있다.
간절히 바라건대,
언니와 내가 그러하듯,
우리 세 아이들도 평생 친구가 되어 서로 기대며 끈끈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와 내가 세상에 없는 그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