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의 평화로운 주말은 우리가 지켜냈습니다.
몇 주간 주말마다 신랑과 단둘이 외출을 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엔 무조건 아들이 하고 싶은 걸 해주기로 했다.
평소라면 자전거를 타고, 뛰고, 걷고, 땀을 쫙 흘린 후 맛있는 걸 먹으러 갔겠지만…
요 몇 달 내가 족저근막염과 전쟁 중이라, 이번 주말은 집에서 놀기로 했다.
게임을 거의 안 하는 나에게, 4학년 아들이 로블록스를 같이 하자고 했다.
“언제까지 나한테 놀아달라고 할까?” 싶은 마음에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다.
문제는… 내 핸드폰 저장 용량.
사진·영상으로 늘 폭발 직전이라, 기기를 새로 살 때마다 최대 저장용량을 골라도 결국엔 꽉 찬다. 나에게 ‘핸드폰 저장 공간 정리’는 꽤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그래서 주말에만 아들과 게임하고 바로 지울 계획이었다.
아들이 골라준 건 좀비를 무찌르는 게임.
다행히 조준만 하면 자동으로 총이 발사되는 단순 총싸움이어서 셋업은 쉬웠다.
(다른 게임은 30초도 못 버티고 죽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장르…)
문제는 ‘이동’이었다.
이동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데 , 내가 화면을 살짝만 건드리면
갑자기 바닥이 확대되고, 허공이 클로즈업되어
시야는 늘 엉뚱한 곳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앞을 볼 수 없어 결국 좀비에게 둘러싸이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어딘가에서
아들 캐릭터가 다다다다다— 달려온다.
좀비를 탕탕탕! 물리치고 나를 구해주며 말한다.
“엄마, 내 옆에 딱 붙어 있어. 그리고 화면을 나 보이게 해. 그래야 엄마 위치를 바로 알지.”
“엄마 여기 있어. 나 울타리 좀 고치고 올게. 그래야 좀비 들어오는 시간을 벌 수 있거든.”
“엄마, 이쪽으로 와. 이 빛이 충전되면 우리를 좀 지켜줄 수 있거든, 엄만 여기 딱 있어. 나는 저기 한번 보고 올게.”
내가 죽으면 또 달려와 부활시켜 주고,
돈이 모이면 총도 사주고, 옷도 업그레이드해 주고…
한 곳에 너무 머물렀다 싶으면
"엄마 나 따라와~ 이동하자 이제!" 라며 카리스마까지!
세상 든든할 수가 없었다.
어찌나 멋있던지!
일요일 저녁, 마지막 판을 끝내자 아들이 말했다.
“엄마, 게임 지우지 말자. 다음에 또 엄마랑 하고 싶어.”
“그치? 엄마도 너무 재밌었어. 게임 안 지우고 다음에 oo이랑 또 해야지! ”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쉬다가,
그 전쟁터를 누비며 나를 지켜주던 아들 캐릭터 모습이 아들 얼굴에 겹쳐 보였다.
“우리가 전쟁을 함께 치르니까 전우애가 생겼나 봐. 어쩐지 더 끈끈해진 것 같아!”
그러자 아들은 살짝 우쭐한 얼굴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뭐 이 게임 가지고 그래~”
그러니 여러분,
당신들이 그렇게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보냈던 이번 주말—
그 뒤에는,
눈 시뻘겋게 충혈되도록 멈추지 않고 싸우고
몇 번의 죽음과 부활을 견딘
우리 모자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