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타이탄의 도구들
엄마가 되기 전,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엄마가 되고 난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저는 엄마가 되기 이전에는 철저히 이성적이었습니다. 너무 딱딱해서 부러질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법 없이도 살 만큼 지시와 매뉴얼을 잘 따르고, 뭔가 하나에 꽂히면 앞 뒤 좌우 보지 않고 냅다 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움직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소위 FM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엄마가 되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이는 내 생각대로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타이밍과 반응과 행동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습니다. 수면교육도 책육아도 엄마표영어도 내가 생각한 대로, 남들이 이야기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아이만의 본성과 리듬이 있고, 양육은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나의 계획대로 하려 했으니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그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첫 아이의 임신부터 아이들을 키우는 대부분의 순간들이 그랬습니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육아의 여정은 양육자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세계로 나를 데려갑니다. 그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할지에 따라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음에 대해 불평, 불만만 읊어댄다면, 육아를 통한 큰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육아가 나를 더 없이 성숙한 인간으로 길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걸 알면, 그걸 가르쳐주러 온 우리 아이들에게 한 없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임신, 출산, 육아의 여정을 거치면서 어떤 능력을 키워오셨나요? 제가 키워 온 능력은 이런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방법 How to Love
아이들 덕분에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존재’에 대한 감각이 없었습니다. 저는 늘 뭔가를 하는 사람이었고, 잘 해낸 성과로 인정받고 칭찬받고 사랑받기를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뭔가 하지(doing) 않는 나는 존재(being)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잘 하고 못 하고 상관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고, 나의 조건적인 사랑에 경고등을 밝혀 주었습니다. ‘엄마,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애쓰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 그냥 사랑하는 거야. 엄마, 뭘 하지 않아도 돼. 나는 엄마가 그냥 좋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A를 하면 B를 주는 조건적인 사랑에 익숙해져있던 저는 아이들로부터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회복탄력성 Resilience
그리고 ‘내면의 장애물을 넘어가는 능력치’를 키웠습니다. 엄마로 살다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 장애물을 만납니다. 인생 전반을 걸쳐 비슷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쓰러지기를 반복했었는데, 엄마가 된 후에 그 장애물의 실체를 제대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에 분노하는지, 무엇에 수치심을 느끼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여러 장면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나는 어떤 상처가 있고, 그 때 내 마음이 어땠으며, 지금은 어떤지 직면했습니다. 부족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고 상담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내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내가 돌고 있는 이 쳇바퀴를 돌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엄마이자 나로 잘 살고 싶다는 사명감이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워주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 Reading and Writing
육아 덕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평소에 잘 보지 않던 책을 펼쳤고, 하나의 책에서 답을 얻을 수 없으니 다양한 책을 읽었습니다. 초보 엄마 시절에는 주로 육아서들을 많이 읽었는데, 아이를 키우며 다른 인생을 살게 되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된 부모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 책 읽는 게 힘들어서 같이 읽을 사람을 모집했고, 내 생애 첫 독서모임은 첫 아이 8개월 때(2014년) 시작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다보니 지금은 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연성 Flexibility
인생에서 유연성이란 걸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너무 딱딱해서 대나무처럼 부러질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던 제가 찌개가 끓는 동안 식탁에서 블로그 글을 쓰고, 일기 쓰는 아이 옆에서 인스타그램 피드에 글을 올리고, 첫째 아이와 이야기하면서 둘째 아이와 신체 놀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과 행동과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웬만한 돌발상황에도 충격을 받거나 고통을 받지 않을 만큼 유연해 졌습니다. 중요한 공부를 할 때면 모든 것을 차단하고 모든 관계를 끊고 그것만 하게끔 나 자신을 사육하듯이 몰았다면, 이제는 일상에서 틈틈이 책을 쓰고 강의 준비를 합니다. 아이와의 감정 대화 속에서 상담을 훈련하고, 아이와의 시장 놀이 속에서 마케팅을 배웁니다. 아이의 숙제를 봐주며 내 수업 커리큘럼을 짜고, 아이의 만화영화를 같이 보며 받은 인사이트로 콘텐츠를 만듭니다.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목표를 이뤄가는 모든 과정에서 행복감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삶과 일은 철저히 분리되어야 행복할거라 생각했었는데, 삶과 일이 통합되고 일치될 때 만족감이 극대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소통 능력 Communication Skills
육아에서 길러지는 또 하나의 막강한 스킬은 바로 ‘의사소통 능력’입니다. 도저히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때부터, 원하는 것이 너무 확실해서 힘들어지는 시기를 지나, 서로 주고받는 대화라는 것을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 부모는 다양한 소통능력을 개발하게 됩니다.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표정과 행동과 울음의 패턴을 관찰하여 아이의 의도와 메시지를 알아냈습니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나의 대화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아이와 함께하는 대화 속에서 더 성숙한 의사소통능력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육아현장에서 익힌 이 기술이 비즈니스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객을 만나면 그 안에 어린아이를 보게 되고, 더 유연하고 포용적인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허벅지를 꼬집어 가면서도 지켜보며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키웠고, 일상 속에서 감사를 찾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작은 행동 하나, 맑은 웃음 한 번에도 한 없이 행복해지는 기쁨을 경험했고, 미래 세대에 남기고 싶은 유산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존재 자체의 잠재력과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커졌습니다. 세상을 더 넓게 보는 눈이 생겼고, 더 큰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관계와 소통에 대한 원함이 생겼고, 그것을 위해 지혜롭게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거슬리는 것들을 끊어내는 대신, 방해하는 것들을 활용해서 더 크게 이루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생각이 나지 않거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놓쳐서 여기 다 적지 못한 수많은 능력들이 육아를 통해 길러졌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엄마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축복이자 행운입니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수많은 감정과 경험이 나를 더 괜찮은 인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육아는 나를 조건 없이 무한히 사랑하는 아이들을 통해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인생을 가르쳐주고, 치유를 경험케 하고, 성장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