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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맘소영 Jul 11. 2022

출산 후 다가온 '경단녀'의 삶

내가 경력 단절 여성이라니


[소영 씨, 00 팀장이에요. 부재중이라 문자 남겨요. 시간 되시면 통화 부탁드려요.]


쳇바퀴 같은 육아를 하던 어느 날 날아온 문자 한 통. 육아휴직 중인 회사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평소 전달할 내용이 있으면 전화보다 사내 메신저로 연락 주시는 분이 부재중 통화에 문자라니. 급히 서랍 한 구석에 숨어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낸 뒤 아이를 안은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생후 50일 밖에 되지 않은 아이는 통화 내내 칭얼거릴 게 분명했지만 께름칙한 느낌에 곧바로 전화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해 들은 이야기는 참으로 유쾌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네? 회사가 없어진다고요?"





사실 육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빠질 수 없는 게 '직장'이 아닐까 싶다. 워라벨과 사교육 등 다양한 이유로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요즘은 전업주부보다 워킹맘이 많지 않을까 싶다.


난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어 여러 사회적 편견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직장'이었는데 한참 결혼식을 앞두고 이직할 회사를 찾던 중, 잠시 머물렀던 회사에서 기혼이라는 사실을 알고 께름칙하게 보던 시선이 잊히지 않는다. 마치 내가 사기라도 친 것 마냥 정말 결혼한 거 맞냐고 재차 묻던 면접관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할 정도.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이직한 현재 회사. 스타트업이라는 요소만 제외하고 보면 워라벨도, 사내 분위기도 괜찮아 오래 다닐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녀계획도 이곳에서 세우게 된 것이다. 운 좋게 자연임신에 성공했고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확인한 순간부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출산이 임박했을 무렵에는 복직 후 아이는 어디다 맡겨야 할지 어린이집은 몇 시까지 등 워킹맘의 삶을 나노 단위로 계산해보기도 했다.



- 회사가 다른 회사로 인수되었어요. 근무지가 달라지지만 같은 계열사라 하는 일도 엇 비슷할 거고요...

- 잠시만요 팀장님, 그럼 혹시 제 육아휴직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아 그게... 육아휴직이 가능하다고 확답드리지 못하겠어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무튼 난 몸조리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아이 낳고 육아하고 있는 와중 회사가 다른 사업체로 인수되었다고 한다. 거기다 육아휴직은 보장하지 못한다니.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려앉은 실직자가  것이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고용노동부에 상담하니 놀랍게도 육아휴직을 보장받을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인수 또는 고용승계로 업장이 달라지시면 해당 업장에서 선생님의 육아휴직을 거부해도 고용노동부에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내 경우는 인수되면서 새로운 업장에 재입사를 하게 되는 건데, 그럴 경우 육아휴직 강제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단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렇게 고용 노동부로부터 들은 뜻밖의 답변으로 벙 쩌있는 와중 이번엔 다른 부서 직원으로부터 내가 임신 계획을 할 때 즈음 현 회사는 이미 인수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 순간에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난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수가 진행되는 몇 주 동안 회사에 빌고 빌었다. 일면식도 없는 새로운 회사 대표님께도 전화를 걸었으며 기존 회사 팀장에겐 눈물로 호소하며 애걸복걸했다. 결국 새로운 회사는 기존 회사와 육아휴직을 약속받은 이야기와 현재 내 처지를 고려하여 '우선' 육아휴직을 쓰는 걸로 편의를 봐주었다.


그러면 뭐하겠나? 새로운 회사는 집으로부터 편도 2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고 같이 일할 사람들은 나를 애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만이 가득한데 말이다.


"애 엄마인데 야근할 수 있겠나?"
"당신이 여기서 근무하며 공을 세운 게 아닌데 도대체 뭘 보고 육아 휴직을 써줘야 하지?"


전부 같이 일할 팀의 팀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내게 이렇게 말을 전할 정도면  봐도 뻔하지 않을까.  아무도 내가 새로운 회사로 복직할 거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또한 그렇다.


인생사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지만 아무튼  육아휴직에 들어간    달여만에 '육아휴직 중인 워킹맘'에서 '잠재적 실직자', '경단녀' 되어버렸다. 일을 향한 나의 열정과 능력들은 결혼과 아이라는 장벽에 가려져 버렸다. 이제 나는 엄마 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걸까? 육아하기도 벅찬 초보엄마에게  다른 짐이 생긴 간이다. 씁쓸한 마음에 오늘도 아이를 재운  냉장고 한편에  맥주  캔을 꺼냈다. 오늘따라 맥주가 쓰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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