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국민 육아템들의 배신
뭘 해도 실수의 연속이었던 육아가 어느 정도 적응되어 새벽 수유가 껌으로 느껴졌던 어느 날. 문득 아이를 역방쿠(이하 역류 방지 쿠션)에 눕히고 집안 풍경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쓰레기 소굴이 따로 없었다. 육아에 적응하기 위해 잠시 살림과 정리를 등한시하고 살았더니 아기용품들이 제 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웃긴 건 하나씩 오목조목 따져보면 다 쓸모 있는(?) 배치였는데 우선 쿠션 옆에는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놀아주는 모빌이 있어야 했다. 항상 아이 옆에 놔주는 애착 인형은 필수. 어릴 때부터 품에 안겨줘야 애착을 느낀다나.
아무튼 하나하나 의미부여를 하면 모두 필요한 것들이지만 이대로 가다간 집 안이 귀신 들린 집이 될 것 같았다. 결국 보다 못한 남편과 나는 쾌적한 집 안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안 쓰는 것들은 버리기 위해 집 전체를 뒤엎었다.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기저귀 정리함부터 있는 대로 집어넣은 장난감 수납함까지 파헤치고 정리를 어느 정도 끝내고 보니 '국민' 육아템들로 불리는 것들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을까?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하는 사람, 그리고 모든 게 갖춰져야 실행에 옮기는 사람. 나와 남편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일명 요즘 말로 '장비충'이라고 불리는데 한창 캠핑 열풍이 불 무렵 남들은 잘 사지 않는 장비까지 사는 바람에 월급이 스쳐 지나간 적도.
"있으면 좋잖아."
꼭 사야 하는 걸까 고민하는 내게 남편이 밥 먹듯이 하는 말을 건넨다. 있으면 좋은 거잖아. 그래? 사실 있으면 좋긴 하지. 팔랑귀와 맥시멀리스트의 조합이 이토록 무섭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육아용품들에 '국민'이라는 단어만 보면 굶주린 사자처럼 달려들었던 것 같다. 우리 둘 다 육아도 장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 한데 세상에 똑같은 아기들이 어디 있겠냐만, 우리 아이는 유독 국민 육아용품만 들이대면 그렇게 싫어할 수가 없었다. 우선 사진 속 차고 있는 손, 발 딸랑이는 갑갑한 지 착용시키자마자 벗겨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게다가 아기들이 재밌어한다는 아기 체육관은 1분 이상 사용하는 걸 보질 못했다. 쑥쑥아 이것 봐. 성심성의껏 놀아줘도 눈을 딱 감고 연신 꺼내 달라 울기만 한다.
결국 비싸게 주고 산 육아템도 아이와 맞지 않아 한두 번 쓰고 만 채로 방치되고 말았다. 초보 엄마의 실수. 내 아이는 '국민'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한 결과였다.
열심히 아이를 키워보니 의외로 아이들은 유명한 육아템보다 이상한 포인트에서 흥미를 느끼는 구석이 많다.
내 아이를 예로 들면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국민 애착 인형으로 불리는 젤OO 대신 악어 베개를 더 좋아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악어 베개의 '팔'이다. 태어날 때부터 줄곧 애착 인형과 함께 눕혀 재웠는데 공룡 인형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팔 부분 솜을 만지작 거린다. 악어 베개도 아니고 악어 팔이라니. 장비충 부부의 신념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말이 있듯 육아도 직접 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좋다고 해서 나도 아이도 좋을 수는 없는 법. 특히 육아에 대한 정보와 용품들이 늘어나는 추세 속, 과거 나 같은 초보 엄마 아빠, 장비충이라 불리는 분들에게 감히 한 마디 던지고 싶다. 현명한 육아를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걸러 듣길 바란다.
왜냐하면 '아기'라는 특수시장 속 모든 걸 최고로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을 노리는 '어둠의 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