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할 낙상사고 그날의 기억
영아(0세) 안전사고 10건 중 9건이 가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아 구급출동 건수 중 30%는 생활안전사고로 인한 출동인 것으로 집계됐다. ~ 장소별로는 가정에서 발생한 영아 안전사고 비율이 92.2%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경향신문 강정의 기자-
아기 키우는 집이라면 한 번쯤 겪어 본다는 안전사고. 그중 하나가 바로 낙상사고다. 침대부터 싱크대, 책상, 소파 등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소방청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영아 구급출동 건수 중 30%는 생활안전사고로 낙상사고 비율이 절반 가량 차지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 100%라고 해도 직접 겪지 않으면 0%라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초보 엄마는 이러한 안전사고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엄마가 조심하면 되는 거 아닐까? 엄마가 조심하면 생활안전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0% 잖아. 논리적 오류 투성이인 저 말을 난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초보 엄마는 아이가 생후 4개월이 될 무렵 긴장의 끈을 놓고야 말았다.
사고는 내 생각보다 정말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어느 평화로웠던 오후. 아기 놀이방에서 아이를 놀아주다 밝게 웃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던 나머지 잠시 카메라를 집었는데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아기 놀이방은 아직 제대로 꾸며놓지 않아 그 흔한 유아 매트도 없었다. 온 사방이 콘크리트 벽과 맨바닥으로 딱딱했으며 곳곳에 장난감과 놀이기구들이 가득했다. 나 홀로 육아에 지친 엄마는 정상적인 사고 회로가 돌아가지 않았고 왜인지 유아 매트가 있는 거실 대신 위험한 장난감이 가득한 놀이방에서 놀기를 택했다.
그렇게 카메라를 집기 위해 손을 뻗던 그 사이. 쿵! 집을 울릴 만큼이나 큰 소리가 났다. 아이가 위태롭게 앉아 있다 뒤로 넘어가며 벽에 세게 부딪히며 떨어진 것이다. 온몸이 싸해지며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곧장 아이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파서 울고 불고 할 줄 알았던 아이는 무슨 영문인지 그대로 축 늘어져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곤 얼마 가지 않아 입에선 몇 시간 전 먹은 분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며 서서히 눈꺼풀을 감기 시작했다. 갓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는 졸릴 상황이 아니었다. 잘못 되어도 아주 단단히 잘못됨을 느꼈다.
'내가 과민 반응하는 건 아닐까? 허위신고면 어쩌지?'
잡다한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내 손은 119를 누르고 있었다. 우리 아이를 도와주세요 제발.
그렇게 119 구급대원들이 오셨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후 급히 응급실로 이송했다. 아이의 상태는 금방 회복되어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왔으나 사고 직후 뇌진탕 증세를 보였기에 엑스레이와 CT 촬영은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엄마의 걱정과 달리 건강했고 약 두 시간 만에 병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뒤 초보 엄마는 한동안 자책감과 사고 트라우마에 시달렸으며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엄마 울지 마세요, 코로나 검사하셔야 돼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그려지는 트라우마를 이제 와서 감히 꺼내 볼 수 있는 이유는 앰뷸런스 안 무심코 건넨 구급대원의 한 마디 때문이다. 그때 당시 구급차 안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었다. 그리고 눈물은 마스크 안뿐만 아니라 코로도 넘어가 훌쩍이게 만들었는데 이 모습을 본 구급대원이 저리 말한 것이다.
당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해 병원 응급실 모두 잠재적 코로나 환자를 경계했기에 내가 훌쩍이고 있으면 아이가 응급실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 냉철한 한 마디이긴 하나 사실인 걸 어떡하겠나. 네 알겠습니다. 하고 훌쩍임을 거두자 구급대원은 무심하게 휴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슬퍼하기 바빴던 난 병원에 오니 한층 덤덤해진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아이 보호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었다. 정신없는 병원 속 눈물 많은 보호자는 필요 없었기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마다 구급대원의 말을 계속 돼내었다. 덕분에 나는 당시 응급실에서 생후 4개월 아기의 보호자로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그때 그날이 생각나곤 한다. 어쩔 땐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자책하다 우울한 감정에 스며들어간다. 그럴 때마다 난 구급대원이 건넨 말을 꺼내어보곤 한다. 겉으로 보기엔 차가운 말 일지 몰라도 엄마에겐 그 한마디가 최고의 위로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