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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맘소영 Jul 08. 2022

엄마표가 최고는 아니더라

사회여, 엄마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세요

엄마표. 일반인들이 보기엔 다소 어색한 단어일 수 있겠다만 엄마들 사이에선 꽤 익숙하다. 일반적으로 육아와 관련된 모든 것들에 엄마의 정성이 들어가면 '엄마표'라는 희한한 수식어가 붙는다. 예를 들면 엄마가 만든 장난감은 엄마표 장난감이 되고, 엄마가 행하는 교육은 엄마표 영어, 엄마표 수학 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많은 엄마들은 아이들이 이유식을 시작할 때 이를 경험하게 된다.



엄마표 초기 이유식 식단


아이들은 빠르면 생후 4개월, 늦으면 생후 6개월부터 이유식을 시작하게 된다. 빨리 시작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만 늦게 시작할수록 아이들의 연하 운동(음식물을 씹고 삼키는 운동) 발달을 지연시키기 때문에 적어도 6개월엔 이유식 먹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제야 분유 타는 일과 친해졌는데 이유식이라니. 아플 때 끓여 먹는 쌀죽 정도로 생각했던 엄마들은 미음, 묽은 죽, 된 밥과 같은 생소한 요리에 당황하고 만다. 이것마저도 평소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알아듣지 요리와 거리가 먼 엄마들은 그야말로 게슈탈트 붕괴 현상을 겪기도. 


그렇기에 초보 엄마들은 육아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인터넷에 의존하게 되며 그들은 자연스레 무지한 중생들을 엄마표 이유식의 세계로 안내한다.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식 만들기


나 또한 이러한 순리에 따라 엄마표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은 단순히 쌀가루와 물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만드는 미음으로 시작했다. 시판되는 고운 쌀가루와 물만 있으면 끝이니 생각보다 할 만했었다. 요리에 재능이 있나 싶기도. 그러나 점점 그 안에 가미되는 다양한 식재료에 넉다운이 되기 시작했다. 


이유식 초기에는 소량의 식재료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손질이 필요하다. 오이나 애호박은 초록 껍데기를 벗겨야 하며 잎채소는 줄기 부분은 잘라내야 한다. 거기에 고기류가 추가되니 복잡한 전처리 과정은 더더욱 늘어났다. 분유는 언젠가 끊는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지 밥은(지금은 이유식이지만) 평생 먹을 텐데. 살림과 육아로 벅찬 삶에 밥이라는 퀘스트 하나가 더 생긴 것이다. 그것도 깨도 깨도 계속 생기는 일일 퀘스트.


그럼에도 정말 열심히 만든 엄마표 이유식 식단들


글로 적기만 해도 피곤함이 느껴지는 중노동. 하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표 이유식을 계속해왔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엄마표'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만들어 먹이면 최고의 엄마가 되고 사서 먹이면 무정한 엄마로 치부해버린다. 사실 사서 먹일 때도 그 안에 배합된 식재료를 꼼꼼하게 살피고 후기와 브랜드를 따져가는 복잡한 과정이 존재한다. 만드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게 아닐 뿐 그 안에 든 엄마의 관심과 애정은 여전하다. 


그런데 사회는 '엄마표'가 붙지 않으면 하찮게 취급하는 걸까. 


엄마표 이유식을 거부하는 아이


한 때 엄마표에 얽매여 있던 난 이유식 만들기에 매진했으나 세 끼 이유식을 먹는 '후기 이유식'에 접어들고 나서야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우선 육아와 살림을 이유식 만드는 일과 병행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유식을 시작할 때면 아이들은 배밀이를 하거나 기어가기를 시전 한다. 즉, 가만히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 눈 팔다 보면 가구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는 일이 생긴다. 거기다 엄마가 안 보이면 불안함을 느껴 애달프게 엄마를 찾기도. 이유식 재료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약 한 시간 가량 걸리는데 어쩔 땐 한 시간 내내 울거나 칭얼거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이를 안고 이유식을 만들자니 보글보글 끓으며 사방으로 튀기는 이유식 방울과 날카로운 도구들이 엄마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아이와 상호작용하며 놀 수 있는 시간을 주방에서만 허비하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다음으로 내 마음을 변화시킨 요인은 아이의 입맛이었다. 점점 자라면서 자아가 생긴 아이는 입맛도 생겼다. 엄마가 만든 건강한 이유식보다 맛있는 시판 이유식을 선호하게 됐다. 언제 아이가 선호하지 않는 식재료가 잔뜩 들어간 이유식을 편식하지 말라며 만들어 내밀 때도 있었는데 몇 입 먹다 금세 입을 꾹 다물곤 했다. 그래도 먹여보려 계속 들이대면 싫다는 의사표현으로 머리를 쥐어 뜯기도. 그렇게 난 아이의 괴로운 모습에 엄마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 모습은 마치 '식고문'과 다름없었기에.





이러한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은 지금은 시판 이유식과 엄마표 이유식을 적절히 섞어가며 먹이고 있다. 또한 먹기 싫어하는 식재료는 다른 엄마들이 만들어 먹인다 해서 무작정 따라 하지 않는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이유식을 만들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이 든다. 물론 이유식 만드는 걸 그리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내 모습은 사회가 강요한 '엄마'의 모습에 부합하려 애쓴 건 아닐까.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요즘이다.


그러니 사회여, 부디 엄마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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