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촬영만 하게 할 거야
결혼할 땐 웨딩촬영, 임신했을 땐 만삭촬영.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매우 곤혹스러웠던 이벤트들. 그렇지만 남들 다 찍는 거 아무 이유 없이 넘기면 후회할 것만 같아 찍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안 찍느니 만 못 한 듯하다. 도떼기시장 같은 모 웨딩 박람회에서 5분 만에 고른 스튜디오에서 웨딩촬영을 진행했고 집 근처 아무 셀프 흑백 스튜디오에서 10분 만에 후루룩 만삭촬영을 했다. 그만큼 사진과 거리가 먼 우리 부부. 만삭촬영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사진과의 만남은 없을 거라 믿었건만 본격적인 촬영의 시작은 출산 후부터였다.
보통 조리원 계약을 하고 나서 무료 만삭 촬영해주겠다며 조리원과 연계된 스튜디오에서 산모들에게 연락을 돌린다. 주로 만삭촬영과 성장앨범에 관한 내용을 안내해주는데 대부분 만삭촬영 보다 (특히 첫아이) 성장앨범 패키지를 계약한다고. 성장앨범은 말 그대도 아이가 갓 태어 낫을 때부터 첫 번째 생일을 맞이 할 때까지 촬영을 한 사진을 모은 앨범을 칭한다.
뉴본(~생후 30일 전), 100일, 200일, 300일, 돌(첫 생일)
보통 위 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분기 마다 콘셉트가 다르게 진행된다. 그리고 성장앨범 촬영 시기가 다가오면 육아에 지쳐있는 부모들는 전문가의 손을 빌려 예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나 또한 조리원 계약 후, 성장앨범과 관련한 영업전화를 받아 본 적이 있다. 상담사의 화려한 말솜씨에 홀려 잠시 계약할까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의 경험에 빗대어 봤을 때 아래와 같은 단점들이 떠올랐다.
본인은 어릴 적 성장앨범을 잘 꺼내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없어도 그만 아닐까?
생각보다 가격이 꽤 나간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청담동 웨딩 스튜디오만큼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만한 값어치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귀찮고, 귀찮고 또 귀찮다. 1년 동안 매 분기별로 스튜디오에 방문해야 되는데 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다시 곱씹어 본 끝에 결국 성장앨범 계약을 포기했다. 대신 아이를 낳고 난 뒤 난 셀프 성장앨범 제작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다신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느꼈을 뿐. 그렇게 수많은 촬영과 졸업한 나는 어째서인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또다시 촬영의 늪으로 빠져들기를 자처했다.
생후 30일까지는 몸조리에 치중했기에 50일부터 셀프 성장앨범 제작에 돌입했다. 자고로 내가 생각하는 '셀프 성장앨범' 이란 self라고 해서 다가 아니다. 전문가 도움 없이 엄마가 만드는 거 지만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과 견줄만해야 '셀프 성장앨범'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 정신없이 돌아가는 육아 일상에 피곤했지만 쉬는 시간마다 50일에 찍을 수 있는 콘셉트 소품을 예약한 뒤, 우리 집에서 자연광이 잘 들어오는 곳, 몇 시에 시작해서 어떤 포즈로 어떻게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리고 대망의 50일 촬영 날이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촬영에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 카메라를 보지 않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기 일수였고 의상이 불편한지 계속해서 보채기 시작했다. 조리원에서 몸조리할 때 이후 이렇게나 땀을 많이 흘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출산 한지 얼마 안 된 몸뚱아리는 뜻밖의 디톡스를 맛보게 되었다. 이래서 엄마 아빠들이 성장앨범을 계약하는 건가? 그때 그 제안을 거절한 게 후회가 되었지만 우리 모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50일 촬영은 결과물은 보정을 곁들이니 꽤 그럴싸하게 나왔다. (라고 믿고 싶음) 비록 사진에 문외한 엄마라 촬영 자체는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앨범을 만들며 쌓은 각종 에피소드는 성장앨범 패키지와 다르게 돈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추억이라 생각한다. 아니 이렇게 믿어야 될 것 같다.
모쪼록 훗 날 엄마가 만든 정성 가득한 셀프 성장앨범을 보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 날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