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수줍은 순간이 있어
얼마 전 학교에서 학예회를 열었다. 학예회 시즌이 되면 선생님들은 분주해지고 아이들은 마음이 들뜬다.
학예회 날 아침,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께 보여드릴 자신의 모습에 긴장 반 기대 반으로 들떠있었다. 내가 학교에 도착한 걸 보자마자 소리 지르는 아이들도 있었고 방방 뛰며 날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들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날을 기다렸고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한 아이는 아니었다. 리허설을 위해서 옷을 갈아입는 그 순간부터 그 아이의 얼굴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옷을 갈아입지 못하겠다는 그 아이를 보며 처음에는 친구들과 같이 옷을 갈아입는 것이 불편한가보다 생각해서 따로 공간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그것도 불편하면 화장실에서 갈아입어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계속 설득도 해보고 달래도 보았지만 고개만 떨구고 있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타들어갔다. 학예회 때는 아이들 의상 입는 걸 도와주고 치수에 맞게 옷핀도 꽂아주고 마지막 연습도 하고 바쁘게 돌아가야 하기에 그 아이만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에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말씀드렸고 부모님께서는 전화통화로 말해서는 안될 것 같다며 직접 찾아오셨다.
부모님이 오셔서 설득도 해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주변에서 아이가 고집을 부리는 것이거나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무대에 서지 못한 이유는.. 너무 긴장이 되어서, 그리고 부끄러워 서였다. 연습 때도 잘하던 아이였는데 얼마나 긴장했는지 다른 친구들 공연 보러 공연장 가는 것도 싫다고 해서 겨우 설득해 데리고 갔다. 몸이 따뜻하면 긴장이 조금 풀어질까 싶어 손난로도 쥐어주고 떨리면 먹으라고 비타민도 챙겨주었지만 결국 그 아이는 무대에 서지 못하고 학예회를 마무리했다.
그 아이를 보며 어떤 아이들은 ‘정말 긴장이 많이 됐구나’라고 생각했고 어떤 아이들은 ‘도대체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음을 다른 선생님께서 대신 쳐주셔서 공연에는 아무 문제없었지만 일부 아이들은 그 아이가 아니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이 책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볼 옆에 푸른 꽃이 피어있다. 말하는 게 힘들고 사람들이 많을 때는 더 그렇다. 그래도 노래를 부를 때는 쉽게 말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른 폴리아나를 선생님도 친구들도 기다려주고 배려해줬지만 서서히 폴리아나를 무시하고 놀리기 시작했다. 그런 폴리아나에게 친구들은 상상 속 친구들 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폴리아나에게 자기소개를 계속 부탁하면서 폴리아나가 노래로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이다. 노랫말이 아름다우면서도 뭉클해진다. 이 노래로 폴리아나가 변하거나 친구와 선생님이 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책은 그렇게 끝난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혹시 수줍거나 부끄러워서 말을 잘 못한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첫 등교 때,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입학할 때 등을 이야기했다. 혹시 이런 경험이 많은 학생이 있는지 아니면 저는 이런 경험이 거의 없어요 하는 친구가 있는지 물었더니, 아이들이 제법 고민하면서 손을 들었다. 학예회 때 무대에 서지 못한 아이는 그런 경험이 많다고 손을 들었다.
아이들에게 ‘수줍음이 많거나 적은 것이 이상한 일일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둘 다 이상한 것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후 폴리아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포스트잇에 간단히 적어보게 했다.
나름 폴리아나에게 괜찮다고 응원하는 아이도 있었고, 기다려주겠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주변에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괜찮아’라고….
폴리아나가 노래를 부른 후 주변 사람들이 변했는지 안 변했는지 모르는 것처럼 나 또한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변할지 안 변할지 모른다. 그래도 이런 작은 경험들이 모여 언젠가 비슷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 이해하고 배려하는 아이들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