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못 해!

by 박밝음

회사에서 처음으로 승진을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우선은 기쁘고 뿌듯할 겁니다. 성과를 인정받은 느낌에 기분 좋고, 주변에서는 축하 인사가 쏟아지겠지요. 부러움의 말들이 오가기도 할 테고요. 앞으로 나의 커리어와 직장 내에서의 역할,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더 큰 포부와 함께 청사진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자 그럼 승진의 기쁨을 뒤로하고, 새로운 직위와 업무를 부여받은 첫 순간으로 가 볼까요? '나'라는 사람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갑자기 해야 할 일은 많아졌고 일의 난이도도 높아졌으며, 특히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일들이 많아집니다. "대리쯤 됐으면 이 정도 일은 껌이지 뭐~" 라며 농담처럼 던지는 상사의 말에도 마음이 쿵 내려앉고요. 특히, 함께 승진한 다른 사람들이 나와는 다르게 맡은 일을 척척 해내는 것처럼 보이면 자신감은 점점 더 바닥으로, 아니 땅굴까지 파고 들어갈 만큼 떨어집니다. 그러고는 생각하지요.


'아... 내가 이걸 다 해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못 해!!"


선생님이 교실에서 놀이하고 있는 노랑이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묻자, 대뜸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뭔가 어려움이 있던 상황도, 해야 할 활동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요. 자유 놀이를 하던 중에 갑자기 튀어나오기에는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이었지요.


가만 생각해보니, 유치원에 입학한 이후로 별 것 아닌 일에 자주 '나는 잘 못 해', '잘 모르겠어', '엄마가 해줘'라는 식의 이야기를 집에서도 자주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입학 전에는 분명 빨리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자기는 이제 다 커서 유치원 갈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었는데 말이에요.


그러고 나니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유치원에 갈 때 노랑이가 느끼는 불안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를요.


노랑이의 불안은 환경의 변화로 인한 것보다는,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이 갑자기 늘어남으로 인한 것이 더 큰 것 같았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도와주시긴 하겠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신발을 신고 벗는 일, 줄을 서서 계단을 오르고 급식실로 이동하는 일, 밥을 먹고 식판을 정리하는 일 등 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이 아이에게는 버겁게 느껴졌겠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지 못할 것만 같고,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고, 그러니 등원은 더더욱 하기 싫어지고요.


대략적으로나마 불안의 근원을 알게 되니, 지금 노랑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같은 마음으로 힘겹게 등원하는 우리 새싹반 아이들에게도 꼭 이야기해주기로 다짐하면서요.



처음에는 누구나 실수도 많이 하고 잘 못 하는 게 당연한 거야.
밥풀 많이 흘려도 괜찮고, 국 조금 쏟아도 괜찮아.
어떨 땐 옷에 쉬(혹은 응가)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겠지만,
뭐 어때. 갈아입으면 되지.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지고 잘하게 될 거야.
어려울 땐 선생님께 "도와주세요!"라고 이야기하면 돼.
그럼 언제든 도와주실 거란다.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늘 교실에 함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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