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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선생님 Jan 16. 2022

애착 신화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죄책감에 휩싸인 채 오늘의 육아를 견뎌내고 있는 당신에게

올해로 첫째 노랑이는 여섯 살, 둘째 이랑이는 네 살이 되었다. 나의 육아 경력 또한 햇수로 6년 차. 직장 생활과 두 아이 육아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워킹맘의 삶은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여도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 아이들도 각자가 처한 상황에 적응하고 대응하며 매일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나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체력적 한계도, 쪽잠으로 연명하던 수면부족의 고통도, 일상의 모든 시간들이 고스란히 아이의 것이 되어감에 대한 허탈도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대로, 에서 배운 대로 아이를 키우지 못함으로 인해 비롯된 죄책감다. 감정 조절 문제나 서툰 육아 기술 같은 건 차라리 나았다. 내가 반성하고 노력하면, 내가 조금 더 배우고 익히면,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되는 것이었으니까(물론 이 역시도 말처럼 쉽게 되는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하).


그런데 '애착'에 관한 이야기 앞에서 나 늘 무력해졌다. 많은 전문가들은 육아에 있어 애착을 매우 강조했고 중요시했다. 그중에서도, 애착이 형성되고 견고해지는 시기인 24개월(혹은 36개월)까지는 엄마가 주양육자로서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아야 하며, 그것이 안정적인 애착 형성에 있어 가장 좋다주장했다. 많은 육아서와 전문가의 강연 등을 찾아봐도 한결같은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첫 아이는 10개월에, 둘째 아이는 9개월에 엄마와 떨어져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 당시 나와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3개월의 출산휴가와 1년의 육아휴직이었다.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최대한 짜내어봐도 1년이 부족했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어린이집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집에서 원하는 시기에 맞추는 것도 필요했기에 두 아이 모두 돌 전에 기관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운데, 아이 평생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칠 '애착의 형성'이 나로 인해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는 건 아닐까 불안했고, 하필 일하는 엄마를 만나 이런 위험을 감수하게 된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복직 이후에는 아이가 지나치게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리거나, (발달 상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당시 내 눈에는) 문제라고 느껴질 만한 행동을 보일 때면 늘 이런 물음이 뒤따랐다.


'내가 너무 일찍 아이를 떼어 놓아서 이러는 건 아닐까?'

'애착의 형성이 잘 안 되어서 생기는 문제인가?'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정말로 엄마의 전적인 돌봄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일까? 육아에 지쳐 아이에게 적절한 상호작용과 한결같은 애정을 주기가 힘들다면, 다른 양육자나 보육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오히려 안정애착 형성에 더 긍정적이지 않을까?


또, 애착의 형성에 '시간의 양'이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것일까? 짧은 시간이더라도 양질의 상호작용과 유대감 형성이 더 중요한 건 아닐까? 엄마와 일찍 떨어져 지낸 아이들에게 정말 유의미하게 높은 확률로 애착 형성에서의 어려움이 있었을까?





아이 자신이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애착 형성에 관한 두려움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때, 우연히 참여했던 부모교육 강의에서 들었던 말이다. 애착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읽었지만, 이 한 마디만큼 마음에 강력하게 새겨진 것은 없었다.


실제로, 이후 내가 찾아본 애착에 관한 수많은 연구 논문들은 안정 애착 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양육태도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아이에게 온정적인 태도로 신뢰를 주며 아이가 늘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양육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


또한, 최근에 이루어진 많은 연구들은 부모와의 분리 시기나 조기 보육기관(어린이집) 경험, 부모의 맞벌이 여부는 애착 형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일부 논문에서는 부모의 맞벌이 여부와 애착과의 상관이 있었지만, 이는 직접적인 영향이라기보다는 부모 스스로 느끼는 양육에 대한 불안감과 조바심, 근무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도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의 양보다, 함께 채워나가는 그 시간의 '질'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 그렇기에 아이와 일찍 떨어지게 된 상황과 그로 인한 미안함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쌓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하루를 맞이하는 순간, 그 곁에 엄마가 없다는 생각을 할 때면 여전히 마음은 아리다. 엄마 대신 할머니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늘 짠하고 애달프다. 그러나 이제는 미안해하지 않으려 수시로 마음을 먹는다. 나는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늘 최선을 다했기에.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발품을 팔며 어린이집을 찾아다녔고, 나의 불안과 피로가 아이들에게 가 닿지 않도록 애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그저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을 비비며 뒹굴고 깔깔거리며 그 시간을 채워갔다.


함께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아이들은 늘 엄마의 사랑이 고프. 아이들이 가장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엄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는 것은 아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님을, 워킹맘으로 지내온 6년의 시간을 겪으며 이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잠시의 헤어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지녔다. 함께 하는 조각조각의 시간로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작은 조각의 시간이지만, 그것은 모이고 쌓여서 더욱 단단해지고 견고해질 것이다.


나와 같은 길을 경험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향하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하지 않기를. 우리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닿지 않을까 의심하지 말기를. 그저 함께 하는 순간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채워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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