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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선생님 Jan 15. 2022

나는 더 이상 육아서를 읽지 않기로 결심했다.

넘치는 육아정보 과잉의 시대가 버거운 나, 그리고 당신에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만큼 누구에게나 낯설고 두렵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많이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불안하고 초조한 일이 출산과 육아, 그리고 부모 됨의 일이. 미지의 영역이었던 '출산'을 제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나면, 세상에 태어나 그저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너무나 작고 가냘픈 존재를 먹이고 재우고 안고 달래며, 손목과 무릎과 허리를 내어주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


아이가 자라 '이제 좀 살 만한 것 같다' 싶으면,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 집단 속에서의 약속과 규칙들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찾아온다.


아이들은 쉼 없이 자랍니다. 아이를 기르는 일 또한 쉼 없는 변화와 고민의 연속이고요.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이만하면 육아도 좀 수월해지고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란 게 그리 만만하지가 않. 아이가 자란 만큼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고민거리가 나타난다. 한글 학습지 몇 살부터 시켜야 할지,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할지, 미래 사회에서는 코딩이 중요하다는데, AI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이건 또 무엇이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등등.... 끊임없이 생소하고 막막한 과제의 연속이.


이런 상황에서 양육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포기? 당연히 안 된.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기에, 주어진 당면 과제를 포기하는 것은 고를 수 없는 선택지나 마찬가지이다. 적당히 대충 하기? 그것도 물론 안 된다. 부모 됨은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 애써야 하는 것,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 방법이라는데, 어찌 이를 대충 둘러대며 넘길 수 있겠는가. 그건 엄마로서 당연히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 안 돼, 안 돼.


결국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열심히 공부하고 찾아보며 주어진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 무엇을 공부해야 하냐고?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1.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 육아 전문가의 가르침

2. 먼저 이 길을 성공적으로 헤쳐 나간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


이렇게 나의 육아서 탐독  육아정보 수집의 여정 시작되었다.




처음은 좋았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마치 '헌신적인 엄마 상'이 된 것 같아 스스로 뿌듯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작은 배처럼 막막하고 위태롭던 육아의 길에서 정답으로 향하는 부표를 만난 것만 같아 반갑기까지 했다.


조금만 찾으려고 눈을 돌려도 정보는 이미 주변에 차고 넘쳤다.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좋은 엄마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똑똑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엄마가 꼭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언어 발달/ 사회성 발달/ 정서 발달 등 결정적 시기에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등등. 


'육아의 비법' '엄마의 역할'을 키워드로 하는 육아서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TV, 인터넷, 유튜브에서는 각종 육아 전문가(혹은 전문가를 표방하는 사람들)가 자신들의 주장과 스킬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여력이 되는 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읽으며, 현실의 육아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의 엄마가 되기 위해 무척이나 애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부족한 엄마, 형편없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에게 미안했고,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너무나 쉽게 육아 비법들을 이야기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뒤돌아서면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모습 보였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아이를 위해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안타깝게도 나는 너무 지쳤고, 버거웠다. 그래서 그 과제들을 해내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자주 반성했고, 그러다 자책했으며, 때로는 분노했다. 비뚤어진 화살은 엉뚱하게 아이를 향하기도 해서, 이상적인 육아의 장면을 만들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생각에 다다랐을 땐 종아이 탓을 했고, 가끔은 아이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기까지 했다. 그제야 느꼈다.


"아, 이건 아닌데... 뭔가 잘못됐다."


정신을 가다듬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


좋은 엄마라는 건 뭐지?
아이를 잘 기른다는 것은?
나는 무엇을 위해 육아서를 읽고,
육아 방송을 뒤적이며,
SNS에서 '육아정보'를 검색하는 거지?

아이를 위한다는 말로
잘 포장된 자기만족에 빠져,
실상은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온갖 육아 정보에 빠져 허덕이던 시간들을 잠시 멈추고 본질에 가까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고 나니 새롭게 눈이 뜨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나'와 '내가 그리던 엄마로서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더 이상 육아서를 읽지 않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쉼 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을 분별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러해야 한다'며 당위를 부여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죄책감을 느끼며 좌절하는 대신, 때로는 의문을 고민도 해보며 그 답을 찾기 위해 내게 맞는 진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알았다. 육아를 함에 있어 ‘당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떠한 색을 지니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일단 엄마가 되었다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 던 그들의 말은 정답이 아니는 것을. 아니 애초에, 세상 유일한 존재인 나와 내 아이가 중심이 되는 이 육아라는 세계에 완전무결한 하나의 정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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