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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선생님 Feb 07. 2022

아이의 색은 존중하라면서, 부모의 색은 없애라 한다.




나는 공립 유치원에서 3년 차 교사로 근무 중이다. 공립 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유치원 교사 임용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 시험은 1차와 2차로 나누어지며, 1차 시험에 통과해야 2차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1차 시험은 유아교육과정 전 범위 및 논술 과목을 필기시험으로 치르고, 2차 시험은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면접과 수업실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찌어찌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 시험의 꽃인 수업 실연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다섯 명의 면접관을 아이들이라고 상상하며 가상의 수업을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특히 나의 경우, 수업이라고는 교생 실습 때 지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잠시 진행해 본 것뿐, 그 외엔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더욱 걱정스러웠다.


사실 유치원 현장 경험이 없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머릿속에 맴돌던 '나는 유치원 교사의 색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었다. 흔히 유치원 교사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즉 명랑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와 활기 넘치는 리액션, 밝은 표정으로 언제나 긍정 에너지를 뽐낼 것만 같은 그런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이기에. 목소리 톤도 보통 여성에 비해 낮은 편인 데다 말소리의 높낮이도 크지 않고,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에 가깝다. 그러니 나름대로 고쳐보겠다고 애를 쓰는데도 다른 수험생의 시연이나 합격생의 수업 영상을 볼 때면 한없이 작아질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몇 해 전 합격한 선배 교사 앞에서 수업 실연을 연습할 기회가 생겼다. 떨리는 마음으로 실연을 마친 후,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고민들도 함께 털어놓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선 이렇게 말해주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여요. 아이들이 들뜨거나 흥분하더라도 침착하게 교실 상황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그려져요. 아이들이 와서 조잘거리면 언제나 편안하게 들어주실 것 같기도 하고요. 걱정 마세요. 따라 하려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선생님 모습 그대로 보여주시면 돼요. "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집이 많다. 단지 내 어린이집에 다니고, 하원 후에는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주 보는 얼굴들도 생긴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맞는 몇몇과는 육아 공동체가 되어 아이들 이야기도 나누고 여러 정보도 공유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늘 아이들과 함께이기에 딱히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육아 스타일이나 교육관이 드러나게 되는데, 어느 날은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 같아요. 평온하다고 해야 하나? 그게 참 부러워요. 저는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항상 높은 텐션으로 신나고 재미있게 놀아줘서 여러 아이들에게 '넘버원 이모'로 꼽히는 친구였다. 타인에게 둔하고 무심한 편인 나와는 달리, 섬세하게 아이의 감정을 챙겨주고 보듬어주기도 하는지라 나로서는 그런 면이 부럽기도 했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김소영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대부분의 양육서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아이의 개성을 존중해라'인데, 어째서 부모의 개성은 존중하지 않는 걸까? 세상의 엄마 아빠는 다 비슷한가? 양육서니까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지만, 양육자에게 이렇게 관심이 없어도 되나? 그런 상태에서 '이럴 땐 이렇게' 식으로만 접근하면 결과적으로는 아이들도 비슷해지는 것 아닐까?

- 김소영(2021),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177쪽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 저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교실을 잘 꾸려 나가기 위해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감이 생기거나 감이 잡히기는커녕, 어떤 책은 설명이 모호하여 허탈했고 어떤 책은 부모를 야단치듯 가르쳐 불편했다고도 한다. 자녀 교육 시장이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고도 하고.


그러니, 직접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은 어떠할까. 아기는 너무나 작고 여리며 나에겐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한 일이니, 전문성을 내세우며 쏟아져 나오는 온갖 육아 코칭을 쫓아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의 개성' 이야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게 당연하고. 부모도 부모가 처음인데, 늘 '틀렸다, 고쳐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육아를 배우려니 효능감이나 자신감 따위가 생길 리 없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나의 색은, 그것 그대로 나만의 강점이 된다는 것을. 육아에 있어서도 당연히 마찬가지이다. 양육자로서의 나의 모습이 TV 프로그램에서, SNS에서, 책에서, 또 다른 어딘가에서 보이는 모범 부모의 그것과 다르다고 하여 내가 가진 고유의 색을 깡그리 지워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엄마가 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나'였다. 엄마로서의 나에게 부족한 부분,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지금껏 나름의 노력으로 그려 온 나의 그림 위에 조금씩 조금씩 덧칠해 나가면 된다. 색과 색이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는 시간을 통해 그림은 각자에 알맞게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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