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달 Sep 25. 2020

“한국 아줌마들 불편해요.”

초3 아들의 공개수업


2020/9/25/금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의 일상을 브이로그로 찍는 한 청년이 있다. 그 청년의 유튜브 채널을 가끔 보는데, 하루는 친한 미국인 친구과 그 친구의 여자친구와 함께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돕는 영상이었다. 친구가 무심코 던진 질문. “한국 아줌마들 말이야. 어떤거 같아?" 이 질문에 그 미국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Not too comfortable." (좀 불편해) “왜?” “Cuase I feel like they judge a lot." (왜냐면 나를 판단한다는 느낌이 들거든.)  “Just from personal experiences, from taking public transportations with my girl friend, got a lot of dirty looks, and people talking shit, were usually from 아줌마s and 아저씨s.  (그냥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는데. 여자친구랑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면, 나를 더럽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막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줌마 아저씨 였어.)


안봐도 비디오다. 나도 내 겉모습만 보고, 나와 섞은 몇마디 말로 나를 스캔하고 판단하는 아줌마들의 그 눈길이 소름끼치게 싫다. 아.... 그래서 내가 해마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학부모 총회가 그렇게 싫었구나.. 그래서 내가 반모임 나가기가 싫었구나.. 엄마들 사이에서는 그런 우스개 소리도 있다. 평생 안 들고 다니던 에르메스 가방이랑 명품 옷은 학부모총회날 그리고 학교 공개수업날을 위해 들고 입는다고. 난 그 사실도 애들 다 키워놓고서야 알았다. 명품가방 단 하나도 없고, 명품 옷도 단 한 벌 없는 나는 명품이 뭔지도 잘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 총회때 당연히 핸드폰 하나 덜렁 들고 나가곤 했다. 평소 가방을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고, 가지고 다녀봤자 노트북 가방이나 노트북 백팩만 매고 다니는터라,  “아줌마”들의 이 극성이 코메디같다. 남에게 보여지는 겉모습. 옷, 가방, 신발을 신경쓰는 사람은 역으로 다른 사람의 옷, 가방, 신발을 ‘스캔’하며 ‘판단’ 한다. 그걸 알기에 그런 부류의 ‘아줌마’들과는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면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이들 학교 엄마 친구가 없다. 워킹맘이라는 상태가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 주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 겉모습으로 함부로 사람 판단하고 추측하고 단정 짓는 행위는 타인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본인 자신도 괴롭힌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이 가방 들고 나가면 비웃겠지? 내가 이런 말 하면 없어 보여서 날 우습게 알겠지?’ 매사에 일거수일투족을 이렇게 신경쓰고 모임에 나가고 말을 섞는다면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싶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파김치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별별 걱정과 불안이 그날 하루를 자신을 집어 삼키지 않겠는가. 참으로 어리석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뿐 아니라, 몇마디 말이나 실수로 그 사람의 ‘영혼’까지도 파악한 것처럼 단정짓고 증오하고 놀리며 괴롭히곤 하는데, 가장 취약한 피해자가 바로 아이들이다.


어리석은 엄마는 아이의 실수나 부족함을 못견뎌 한다. 그 하나의 실수로 아이 인생 망가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소리를 질러대니 견뎌낼 아이가 없다. 아이는 엄마의 찢어지는 듯한 고음을 듣는 순간 얼음이 되어버리고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다. 아이의 뇌기능은 멈춰버린다. (아이 뿐일까. 어른들에게도 배우자의 이성을 잃은 고함소리는 머리를 백지로 만드는 파괴력이 있다. 폭언은 폭력보다 지독하다.) 친구 집에서 본 예쁜 머리핀이 탐나 슬쩍 집어온 아이에게 소리소리 지른다.  “너 도둑이야? 도둑질을해? 이게 어디서 도둑질을 배웠어?” 여섯살 된 아이를 순간 상습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엄마한테 혼날 것이 무서워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 났을 때도 판단과 단정짓기는 이어진다. “이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네? 이거 사기꾼들이 하는 짓이야. 너 사기꾼이야??” 동생이랑 레고 놀이를 하다가 성을 부숴버린 동생을 한 대 쳤다고 “너 깡패야? 폭력범이야? 아니 왜 말로 안하고 동생을 줘 패???” 아이를 순식간에 폭력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더 끔직한 것은 이 사건은 어린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선명한 상처가 되어, 무의식세계 깊은 곳에 자신의 정체성으로 자리잡는다. 나는 엄마가 저주한 대로 ‘거짓말쟁이, 도둑놈, 사기꾼, 폭력범, 게임중독’이야. 인간 쓰레기야. 불과 6-7세 어린나이에 겪은 단 한번의 충격으로, 엄마의 저주는 아이의 수치심이 되고, 죄책감이 되고, 정체성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종종 걸려 넘어져 아이에게 쏟아붓곤 하는, 어리석은 비약과 단정에 일침을 가하는 동시가 한때 sns 상에 떠돈 적이 있다. 제목은 ‘중독’



중독


틈만나면 게임한다고

중독이라 하지만


난, 학교 갔다 와서 할 뿐

난, 학원 갔다 와서 할 뿐

난, 밥 먹고 할 뿐

난, 똥 싸고 할 뿐


학교도안가고학원도안가고밥도안먹고똥도안싸

틈도없이 하는게 중독이지


틈도없이 잔소리하는

엄마가 중독이지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지은 시가 아니라 동시작가 강기화 님의  시였다. sns 에서 이 동시를 읽고 핵공감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아이를 차분히 관찰하고 ‘왜 그럴까?’를 곰곰히 생각해볼 여유도 없으니, 어른인 내가 혹시 도와줄 수 있는건 없을까.를 생각할 지경까지는  도달할 수가 없다.  늘 그렇듯  ‘이으구. 니가 그렇지 뭐. 넌 게을러. 불성실해. 산만해. 뭐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는 인간이야. 언제 정신차릴까 저 한심한 인간’ 으로 결론 짓는다. 아이는 자란다. 아직 미숙하다. 엄마의 도움과 따뜻한 조언, 그리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런 아이를 다 자란 20세 청년취급하면서 ‘한심한 인간’으로 단정짓는 그 엄마가 사실 한심한 인간이다.


이런 엄마들은 공통점은 자식은 한심하게 여기면서, 하루종일 핸드폰에 시선이 고정된 자신의 중독은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성경의 말씀대로 “남의 눈에 티끌만 쥐잡듯 욕하고, 자기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전형이다. 아이가 핸드폰 사용이 길어지고 게임 시간이 길어지면 함께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대화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힘들지. 엄마도 핸드폰 절제하는게 너무 힘들더라. 어른인 엄마도 이렇게 힘든데 어린 너야 어떻겠어. 이해해. 참 쉽지 않다.” 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너만 힘든거 아니고, 사실 엄마도 힘들어. 이게 원래 힘든거더라.’ 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방법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래도 계속 가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란 말에 힘이 실린다. ‘너는 못났고 나는 잘났거든. 너는 매일 실패하지? 엄마는 매일 핸드폰절제 성공하는 인간이거든? 잘난 내 말 좀 똑똑히 들어!’ 는 설득력이 1도 없다. 게다가 하루종일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 엄마를 묵도한 아이의 눈에는 이 같은 코메디가 없다. 따라서 자기 객관화에 실패한 엄마의 무식한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


아직 미성숙하지만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정과 꾸지람이 아니라 본보기와 겸손한 대화다.


한 엄마가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였다. 이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푼 꿈을 안고 직장을 그만뒀다. 육아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9년간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키웠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장황한 걸로 봐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나친 자기연민은 사람의 눈을 멀게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엄마는 밤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특히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키웠다고 한다. (안그런 엄마도 있나요?) 그런데 학교 공개수업 때 아들의 소극적이고 답답한 모습에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배신감마져 느껴졌다고 했다. 아니 정말 묻고 싶다. 이게 그리 분노하고 배신감마저 들 일인가?


사실 똑같은 경험을 나도 했다. 큰애는 뭐든 손들고 활발하게 발표하는 아이, 늘 임원을 했던 아이인 반면 둘째는 ‘교실에서 나의 존재가 드러나는 걸 극도로 원하지 않아’ 버전의 전혀 다른 아이였다. 초3때 공개수업을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종일관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자발적인 발표는 절대 안했고, 정해진 분량의 발표만 작은 목소리로 대충 하고 앉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거의 책상에 붙어 있다 시피한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던 2호는 누가봐도 ‘이 수업 되게 지루하네’ 라는 메시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메일을 보낸 그 엄마가 목격한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수 있다. 아니 훨씬 더 심각한 상태였으리라.


그러나 나는 아이가 전혀 한심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짠하고 코끝이 찡했다. ‘지루하지. 재미 없구나. 그런데 이런 제도권 교육을 앞으로 9년을 더 받아야 하는데 어쩌니.. 딱하다’. 2호는 호기심이 많으면서 동시에 아주 예민한 아이였다. 머리 회전이 빨라 관심이 금방 꺼졌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니 모르는 사람은 아이가 산만하다 단정 짓기 쉬울 수도 있다.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해서 학교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그런 2호의 기질을 잘 알고 있던 터라, 공개수업에서 보여진 2호의 모습에 놀라거나 실망하기보다는 안쓰런 마음이 들었다. 낯선 아줌마 아저씨들이 대거 들어와 삥 둘러선 부자연스런 교실 공기를 1시간 동안 견뎌낸 것 자체만으로도 기특했다. 얼마나 긴장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편으로는 아.. 학교생활이 이렇게 재미없는데 어떻게 버틸까..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홈스쿨링을 해야겠다. 마음 먹게 된 계기가 된 날이었다.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공개수업이 끝났다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2호는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추면서 복도로 걸어나갔다. 그러고는 친구들이랑 깔깔 거리며 노는게 아닌가. 아....... 수업시간에 연체동물처럼 책상에 늘어져 있던 무기력한 그 초3 어디로 갔나. 언젠가 자기는 학교를 점심시간이랑 쉬는시간에 노는 것 때문에 다닌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홈스쿨링은 안되겠다. 이렇게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인데 언감생심.


아이가 공개수업에서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고 “너 바보야? 왜 발표를 못해??” 라고 고함을 치는 엄마의 폭력과 저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내가 지금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각이 있다면 그 말을 차마 입밖에 내놓을 수 없다. 공개수업때 발표를 하지 못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옆집 아줌마가 우리 아이를 한심하게 볼까봐? 옆집 아이는 야무지게 얘기해서 질투가 나서? 도대체 왜 그것이 문제인가. 내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다른 집 아줌마 시선’도 아니라 ‘내 아이의 마음’이다. 지금 얼마나 긴장될까. 엄마가 혹시 보고 실망하시면 어쩌지? 두려운 마음. 그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지 않을까? 엄마는 수업이 끝난 후 아이를 꼭 안아줘야 한다. 파들파들 떨고 있는 9세 아기를 꼭 안고 안심시켜줘야 한다.


“오늘 공개수업 많이 긴장됐지? 그래도 다른 친구들 발표할 때 딴짓 안하고 귀 기울리는 모습이, 엄마는 참 대견하더라. 발표 좀 못했다고 인생 망하는 거 아니야. 긴장하면 원래 잘 알던 것도 말이 잘 안 나오고 그래. 엄마도 어렸을 때 공개수업날이 그렇게 싫었어. 엄마 아빠 다 모인 자리에서 발표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고. 그런데 학년이 올라다면서 발표를 한두번 하다보니까 어느새 그게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니 쫄 거 없어.”


라고 말해주는 담임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쯧쯧.. 발표 하나 똑부러지게 못하고. 저저 못난이. 라고 단정짓는 담임샘은 무식하다 욕하면서 엄마인 우리는 왜 그 무식한 짓을 날마다 반복하는가. 정작 조건없이 안아주고 조심스레 이끌어 줘야 할 부모라는 사람이 말이다. 사사껀껀 아이를 윽박지르고 무안주고 급기야 화를 내며 단정하는 담임샘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부터 멈추기. 그게 잘 안되면 (겸허한 마음으로)..... 저 따옴표 안의 대사를 소리내어 읊조리며 연습하는 것도 좋겠다.



내 아이가 한심해 보이고

내 남편이 한심해 보인다면

그 셋 중 가장 한심한 인간은,


바로 당신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달리기 할 때, 핸드폰은 어떻게 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