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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Oct 24. 2020

“나 수업시간에 자”

아들의 어떤 말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2020.10.20.수


잠들기 직전 불을 끄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드는 전통은 둘째 2호가 중딩이 되어서도 이어진 우리 가족만의 문화이다. 진짜 속얘기는 이 때 나오기 때문에 놓칠 수가 없다. 이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공을 좀 들였다. 잠자리에 장편소설 읽어주는 루틴을 초등 6학년까지 유지한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5-6학년이 되니 책 읽어주는 서비스도 약발이 떨어지길래 (누가 듣고 있겠어.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영화보기’로 전략을 바꿨고, 평소 유튜브 영화 리뷰 채널을 미국채널이건 한국채널이건 섭렵하고 있는 2호는 꽤 괜찮은 영화들을 잘도 골라냈다. 매주 금요일 밤은 그렇게 영화를 같이 보고 얘기를 나누다 잠드는 루틴을 유지했고, 평일엔 다른 카드를 썼다.


김현정의 뉴스쇼 팟캐스트중 ‘라디오재판정’이라고, 그날의 주제를 두고 두 변호사가 찬성과 반대 각자의 입장에 맞춰 자신의 논리를 개진하고, 이 토론을 들은 청취자들의 문자투표로 판결을 내리는 코너속코너이다. 이 프로그램 청취자들의 정치성향과 가치관도 엿볼 수 있고, 무엇보다 어떤 변호사의 논리가 매력적인지, 어떤 논리가 궤변인지를 살피며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제는 다양하다. 실제로 어제 일어난 일이고 지난주에 일어난 일들, 우리 삶과 직결되는 문제를 가지고 찬반토론을 하는 것이어서 더 재미있다. 70세 노인의 운전면허취소 관련한 이슈뷰터 타다가 불법이냐 합법이냐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해. 난 이거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대화를 나누다보면 녀석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중도인지가 드러나고 재미있다. 나름의 논리가 있고 어른이 나보다 생각이 깊다고 여겨질 때도 많다.


처음이 이 루틴을 습관으로 자리잡게 하는데에도 공이 많이 들었다. 다짜고짜 시사프로그램을 듣자고 하면 거부할 것이 뻔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날마다 신문스크랩을 해오던 내공이 있는 아들들이라 큰 거부없이 시작할 수 있었고, 안 듣겠다고 꾀를 부리는 날을 대비해서 비장의 카드인 ‘발마사지’를 빼들었다. 애들 어려서부터 잠자기 직전에 그리고 잠에서 깨어날 때 ‘성장판 자극’해준답시고 발이랑 다리마사지를 해주면서 재우고 깨웠다. 2호는 특히나 마사지를 좋아했다. 건조한 겨울에는 엄마가 로션을 듬뿍 발라 마사지 해주는 걸 좋아했다. ‘김현정의 뉴스쇼 안들으면 마사지 읎어” 가 훌륭한 카드가 되어 주었다.


잠자리 루틴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시사토론 하부르타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다. 불끄고 나누는 대화다. 잠들기 직전에 나누는 대화. 학교 얘기, 친구들 얘기, 학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선생님들 얘기 등등.. ‘찐얘기’는 불끄고 잠을 청하면서 뒤척거릴 때 그제야 술술 나온다. 잠들기 직전 수다, 그 시간이 넘나 소중해서 새벽 12시 1시를 넘겨도 눈감아 주곤 했다. (나는 ‘늦게 자면 키 안 큰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경험으로 안다. 키는 유전이란 사실을)


그러던 어느날 한참 어둠속에서 수다를 떨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시반. 화들짝 놀라서 “헐. 벌써 한 시반이네. 빨리 자자. 근데 너 이렇게 늦게 자면 학교가서 안 졸려?” 했더니 왈, “당연히 졸리지.” “그럼 수업시간에 힘들어서 어떡해..” 하니 이 녀석 왈.


“그래서 수업시간에 자”


헐...


이렇게 말하더니 나를 힐끔 쳐다보며 내 반응을 살핀다.


2호가 아니라 큰아들이었고, 내가 어린 새댁이었다면 아마도.. 여느 엄마들과 다름없이 뻔한 과민반응과 폭언과 협박으로 아이의 입을 막았을 것이다. 예를들자면... “엄마가 너 그럴 줄 알았어! (평소 아이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음이 들통남) 수업시간에 졸려서 잠을 잘 정도로 피곤하면, 전날 네가 알아서 일찍 일찍 자야지!! 너 수업시간에 자는 것도 습관이야. 운전할 때 조는 것도 습관이듯이. 한번 그렇게 수업시간에 자버릇 하면 계속 그렇게 돼! 아니 수업시간에만 집중해서 들어둬도 나중에 시험시간에 공부안해도 좋은 성적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게 수업시간인데, 잠 잔다는게 말이돼? 엄마는 (라떼는) 수업시간에 자는 건 상상도 못했어!”


아 예~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다. 왜 아니겠는가? 똑같이 중고등학교 시절 겪고 입시 치르고 사회생활 한 인생 선배, 게다가 자신을 끔찍히 사랑하는 엄마의 인생조언인데 틀린 말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이렇게 길게 말하면 전혀 안 먹힌다. 중딩 남자애들은 귀를 막는다. 조언은 무조건 짧아야 한다. 단문. 한 마디. 장황설을 뿜어내면 씨알도 안 먹힐 2호라는 걸 알 정도로 노련한 나는,


웃었다. 그것도 쓰러지면서.


황당하기도 하고 대답이 너무 뻔뻔하고 2호다워서 웃음이 나왔다. 와... 얘는 진짜 엄마한테 할 말 못할 말 가리는게 없네. 맘에 들어. “엄마 나 수업시간에 퍼 자. 졸려서.” 엄마한테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중학생이 대한민국에 몇명이나 될까. 나는 이 대답이 참 귀하다. 마음 쓰릴 만큼 냉정하고 정확한 2호의 ‘자기인식’, 그리고 이 고백이 가져올 후폭풍을 감당하고 내뱉는 저 ‘배짱’ 이 좋다. 아 물론 2호의 자기인식력은 타고난 기질의 영향도 있을 수 있겠으나, 자신을 포장하거나 과장함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거침없이 고백하는 저 배짱은 8할이 내 덕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들어와도 다짜고짜 자신을 윽박지르거나 미워하거나 고함을 칠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 2호. 이런 배짱은 양육자와의 신뢰관계 속에서 강화되고 성숙된다.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인생 살이에 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이란 말인가. 자기인식과 내 마음 가는 대로 말하고 사는 배짱.


겁에 질려 거짓말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과장 역시 지독한 거짓말인데,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큰 아이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한테 자신의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미성숙한 아이는 실수 투성이고 글씨도 맨날 삐뚤빼뚤이다. 속상하고 또 속상하다. 그렇잖아도 긴장하고 있는데 엄마가 자기의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고 실망하면 아이는 무너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인 우리는 아이앞에서 실망한 낯빛을 보이지 않으려 (생각보다 많이) 애써야 한다.


하지만 크고 작은 일에 과민걱정하고 과민반응하는 엄마들은 수시로 아이를 절망에 빠지게 한다. ‘오늘도 엄마가 나때문에 속상해 하셨어’란 죄책감을 반복해서 심어준다.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는 자신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지한 꼬마들은 자기방어지제를 작동시켜 자신을 과대포장하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한다. 상황에 따라 순발력 있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거짓말이 반복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기인식력’이 고장난다. 과대포장한 자신을 실체적 자신으로 착각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자기기만이 굳어진다. 유체이탈 화법을 쓰기도 한다.


“엄마, 나는 수업시간에 한.번.도. 졸거나 한 적 없는데 누구누구는 수업시간 마다 엎드려서 잔다? 맨날 게임을 밤 늦게까지 하는 앤데, 그래서 맨날 졸린가봐.”라고 말하는 내 아이가 어쩌면 ‘친구’ 이름을 빌려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엄마의 반응을 사전에 살펴 할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따라서 어떤 친구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할 때 엄마의 반응이 중요하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 내가 즐겨  쓰는 ‘근사(정확에 가까운)’한 답변이 하나 있다. 그건,


“아.... 그럴 수 있어.” 그리고 2호가 초1때 나에게 알려준 그 말, 그 친구는 “무슨 사정이 있나봐” 이 두마디 말은 그 어떤 충고나 조언보다 강력한 힘을 갖는다. 대화를 시작하는 좋은 첫마디이다.


자신에게 가혹하고 예민한 엄마들은 자식에세도, 남편에게도 가혹하다. ‘. 그랬구나. 그럴수도 있을  같아.” 라는 열린 대화가 아닌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어?” 닫힌 말로 소리지른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그렇다. 말도 안되게 실망스런 짓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당신도 인간이에요. 당신은 그럼 신이세요?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가 있어?’라고 분노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인간 못 봤다. 자기돌아봄의 부재이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모르고 그런 건  실수야. 실수는 죄가 아니야. 이 실수를 통해서 하나 배웠다. 그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다음엔 조금 애써보자” 대신에 “절대로 용서 못해. 절대로 그냥 못 넘어가. 다시 써.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써보라고!!”소리소리 지른다. 공포에 질린 아들의 뇌는 멈춘다. 이런 ‘드라마’는 상대의 변화를 끌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단 한번이라도, 살면서 이런 드라마는 안 찍는 편이 낫다. 아이 마음과 뇌를 움직이는 건 엄마의 ‘잔소리’와 ‘협박’이 아니라 ‘공감’과 ‘측은지심’뿐이다. 그게 안되면 피식 웃음으로 끝내던가. 씨익 웃고 “아이고.. 요놈..”  머리한번 쓱쓱 쓰다듬고 자리를 뜨는 편이 낫다. 이 손짓이, 미소가 사랑이다. 조건없은 지극한 사랑.


엄마들이 아이에게도 자신에게도 좀더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마음속으로는 흠칫 놀라고, 두렵고, 걱정되고, 조바심이 나더라도, 아이 앞에서는 낯빛과 목소리를 가다듬고 연기를 해도 좋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엄마도 그렇게 졸리더라. 수업시간에 해드뱅잉하다가 개망신 당한 적도 있고. 외할머니는 꿈에도 생각 못하겠지만 말이야.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없는 에피소드를 지어내도 좋다. 아이의 마음은 스르륵 풀릴 것이다. 우리 엄마한텐 무슨 얘기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가 육아의 지고지순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토록 인간미 넘치는 엄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랑통장에 잔액이 두둑하게 쌓인다. 애 어려서 통장 관리 잘 해둬야 사춘기때 급전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 아이의 사소한 실수 바로잡겠다고 애 마음 할퀴며 협박하는 대신, 꼭 안아주자.


엄마가 짧지 않은 인생 살아봤는데, 그런다고 안 죽어. 다 살아져. 인생 길게 보면 별일 아니야.


인생의 가장 힘든 구간을 지나가고 있을 때, 다시 일어날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엄마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힘이 되어주는 엄마의 말한마디가

아이 가슴에 씨앗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엄마의 협박과 불안에 아니고.


그리고 더 많은 중딩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 오늘도 수업시간에 퍼 잤어 엄마. 나 정신 좀 차리게 도와줘”








코미랑 놀면서 좋~단다. 게임을 하건 강아지랑 놀건 뒤통수만 봐도 이쁘니.. 널 어쩌니, 나의 영원한 막둥이 중3 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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