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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Oct 21. 2020

“문학하고 앉아 있네”

정확한 문장과 근사한 문장


2020.10.21.수


“글쓰기의 근원적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정확한 사랑의 실천> 신형철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무슨 걸작을 만드시려고 한 줄도 못 썼대요?”

앞의 말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한 말이고, 뒤엣말은 작가 이슬아가 한 말이다.

얼마전 읽은 김애란의 장편소설을 두고 신형철이 한 말이 생각 났다.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이 남자가 뭐길래, 그의 입에 걸린 이름, 김애란에게 질투가 나는거지? 질투란 나랑 레베루가 비슷한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시기심이다. 그러므로 내가 김애란을 질투한다는게 어불성설인 것 맞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이는 걸 어쩌란 말인가.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비롯됐다.


원고가 써지질 않는다. 답보 상태. 그 어떤 문장도 마음에 들지가 않고, 무엇보다 “정확”하지 않다. (잘났어 정말) 신형철의 따끔한 문구가 계속 나에게 묻는다. 그게 지금 정확한 단어야? 그 문장, 정확한거 맞아? 과장됐잖아. 그런 느낌 아니잖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어제는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작가들이 끝내 ‘시’를 탐닉하고 공부하고 습작하는 이유를 알겠다. 정확한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날 것 그대로의 문장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다보면 만나게 되는 종착역은 결국 시. 시로 직접 들어가기는 어려워서 신형철 책을 브릿지 삼아 들어가보자 싶어 집어든 <몰락의 에티카>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나를 더 주눅들게 했다. 글을 쓰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거 아니야? 이정도로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써야 문장이라 할 수 있지. 내 책이 누군가의 시간낭비나 종이낭비가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니 그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위축 되어 더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다.


그러던 중 유튜브 새영상 알람이 떴다. 이슬아 작가가 장기하와 같이 녹음한 이름모를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편집해 올린 것 같다. 무슨 얘기 끝엔가 이슬이가 장기하에게 핀잔을 주고 있었다. “아니, 무슨 걸작을 만드시려고 글을 한 줄도 못 썼어요?” 이슬아는 이렇게 말했고 장기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게요. 무슨 대단한 걸 쓰겠다고 그런거지?” 이슬아의 이 핀잔이 거만하게 들리지 않은 까닭은, 그녀 역시 수십번 수백번 더 자신에게 던졌던 말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늘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핀잔을 주곤 했다.”걍 써. 걍 해. 니가 가진 능력만큼, 네 생각의 그릇 만큼, 바닥 보여도 걍 써. 어설프게 대가 흉내낼 생각일랑 말고 네 모습 그대로 촌스럽게 써. 그리고 감당해. 그래야 성장해.” 그런데 오늘은 내가 그게 안된다. 고장난 것 같다.


없는 능력 쥐어짜 있는 척 하다가는 대망신을 면하기 어렵다는 걸 안다. 그래도 좀 난체 하고 싶은게 사람 심리인가 보다. 나는, 정말이지 나는 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책을 3권 낸 작가가 되어 있었고, 처음에는 잡티만 가릴 요량으로 했던 화장이 점점 두꺼워지는 걸 느낀다. 이런 풀메이크업은 느끼하고 안쓰럽다. 그러니 내 잡티, 내 상처, 내 못남, 내 무식을 드러내고 감당할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갑자기 시를 배우고 싶다. 시를 쓰면 자유로와질까?) “정확한 문장” 쓰란 채찍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신형철은 이렇게 말을 수습한다. “삶은 수학과 달라서, 100% 정확한 문장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학은 언제나 ‘근사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근사하다’라는 칭찬의 취지가 거기에 있다. “근사”는 “꽤 비슷한 상태”를 말한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p.27


그래. 사실과 근접한 것만으로도 어디야. 게다가 내 글은 ‘문학’이 아니잖아. 헐.. 문학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멈추자 헛웃음이 나왔다. ‘정신 차리자 나야. 내가 무슨 박완서도 아니고 김애란도 아닌데 지금 뭐하는 거지..? 너 지금 문학하고 앉아 있는?  그냥 오늘 네 마음에 들어온 느낌, 네 머릿속을 휘몰아치는 생각의 파편을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쓰고 싶은 거 아니었어? 네가 쓰는 글은 독자들의 국어감각을 깨우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그런 문학 아니잖아?’


라고 쓰고 보니, ‘아니. 나 그런 글 쓰고 싶은데?’ 란 생각에 발끈해진다. 난 그런 글 쓰고 싶어. 독자들의 국어실력이나 어휘력을 섬세하게 발달 시키는건 내 어휘력이 비천하니 불가능 하더라도. 조악한 단어와 문장의 조합일지라도 내 경험이, 내 시선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을 뜨겁에 위로하길, 자신을 돌아보며 어머나 세상에! 란 신선한 깨달음을 주길 바란다. 간절히. 그런 글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글을 쓴단 말인가.


그러니 오늘은 “문학하고 앉아 있네, 대충 써~” 라는 말과 “훌륭한 작가는 정확한 문장을 씁니다”란 두 문장 사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줄타기를 하고자 한다. 너무 힘들다고 주저 앉지도 않을 것이고, 아 대충해~ 라며 무책임한 글을 쏟아내지도 않을꺼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다. 시집을 꺼내 읽고, 소설을 꺼내 읽으면서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고, 끝내 “근사”한 문장을 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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