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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Oct 12. 2020

아파트 엘리베이터 톡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2020/9/22/화


2호는 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에게 말 거는 것을 싫어했다. 아니 싫어함을 넘어서 혐오했다. 좀 커서는 엘리베이터에 동네 꼬마들이 우르르 타면,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쪽으로 휙 돌려 (미리) 째려봤다. ‘엄마 가만히 있어. 아무말도 하지마. 귀엽다고 말글지므. 몇살이냐고 묻지드므 . 말걸면 나 진짜 폭발할끄야’ 경고의 째려봄. 말 걸면 내 엄마 안한다는 느낌정도..? 으읗..?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지난치게 많은 나는 낯선 사람에게 말 거는 것을 좋아한다. 또 대화를 통해 한 인간을 알아가는 과정을 즐긴다. 심지어 그런 나의 능력을 과신해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첫 만남에도 쉽게 마음을 내주니 호감도 쉽게 얻는 편이다. 이런 내 성격이 난 참 좋았고 나의 자랑이었다.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고 나아가 무책임한 결과를 낳아 수습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하루는 코미(시츄) 산책을 하러 나가는 중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할머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고, ‘나한테 말 걸어도 돼요. 나 얘기하는거 좋아해’ 하는 아우라를 풍기는 발랄해 보이는 할머니였다. 자그마한 키에 머리는 백발인데 피부가 곱고, 몸도 날렵하신. 한눈에 봐도 관리를 꽤 열심히 하신 어른이었다. 호기심이 생기면 입을 자동으로 여는 병이 있는 나는 넉살좋게 말을 건냈다. “어쩜 그렇게 피부가 좋으세요? 운동도 꾸준히 하시나봐요” 할머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당신의 피부관리비법과 운동비법을 나열하셨다.


엘리베터는 어느새 1층에 도착했지만 할머님의 이야기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아파트 산책로를 몇바퀴 도는 내내 할머님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했다.나는 어느새.. 그 집 며느리가 내지는 딸이 된듯한 심정으로 맞장구를 치고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어떻게 마무리를 한다.... 코미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 “코미야 이제 집에 가자~”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안 있어 엘리베이터에서 그 할머니를 또 만났다. 어색했다. 딱 한번 말을 건낸 사이. 그날 대화를 나눌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같은 느낌으로 대화를 나눴지만 여전히 낯선 사람. 그 어정쩡한 관계가 영 이상했고 불편했다, 이건 아니야...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그 할머니에게 가벼운 눈인사만 했으리라. 말을 건내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으리라. ‘피부가 좋으시다.’ 말을 건내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수반되는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지 않을 꺼면 시작도 하지 말자. 침묵이 어색하고 시시해도, 침묵하자, 나야.




문득 작년에 꿨던 꿈이 생각난다. 꿈이 너무나 생생해서 자다 깨자마자 메모장에 타이핑해 뒀던 꿈.


2020.2.3.  


어린이영어도서관 같은 아기자기한 방.
6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한 아이만 엄마 무릎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 엄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늘 해던대로 
능청맞고 넉살좋게 
그 꼬마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그 아이를 그 무료에서 구해준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내가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보는 엄마들은
예외없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곤 하지.
왜냐, 난 노는척이 아니라 애보다 더 애처럼 놀거든.
그리고 애들이 너무 이쁘거든.
그 마음을 애들은 귀신 같이 알거든.
이건 “척”이 아니라 “진짜” 임을.

좀 웃긴 얘기지만

세상 모~오든 애들이 나랑 5분만 같이 얘기하면
나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런데 반전. ㅎ  
꼬마가 겁에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그리고
날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이 아줌마 무서워”

ㅎㅎㅎㅎㅎㅎ

어찌나 민망하던지.
내얼굴 새빨게 지지 않았나 몰라.  
민망한 마음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옮겼다.


“엄마, 이 아줌마 무서워”란 그 꼬마의 한마디는 도끼처럼 내 머리를 쳤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옷을 다 벗고 친한척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끔찍하고 공포스런 폭력이 될 수 있구나.란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그런데 깜짝 반전은,

꼬마는 나 무섭다고 엄마 품에 안긴지 5초도 안되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노는게 아닌가.

인생은 요지경이다.

예측불허.


바로 그때
나한테 큰 충격과 상처를 주고
내 인생에서 사라진 J라는 사람이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에 내 앞에 나타나서

내 어깨를 툭치면서
웃으며 말을 건냈다.

살다가 그녀를 다시 마주치면
황당하고 불쾌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어느새
돌아와줘서 좋다.
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참 한심하고 안쓰러웠다. 바부탱이.

그리고 잠에서 깼다.




얼마전 남편이랑 술한잔 하면서 엘리베이터 톡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2호가 엘리베이터안에서 말 거는 엄마를 극혐하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는 얘기였다. 책임지지 못할 관계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겠어. 이제 엘리베이터에서 실없이 말 거는어 안하려고. 그랬더니 남편 왈,


“그걸 이제 알았냐? 넌 어쩜 그렇게 다른 사람 마음 불편할 걸 생각을 못하냐? 그 사람은 얼마나 긴장되겠어? 낯선 사람이 말을 거는데”


헐......... 진짜 생각 못했던 지점 ㅎㅎㅎ 긴장? 진짜? 긴장이 돼? 말걸어주니 반갑고 고마운게 아니라?? 할할할.. 나만의 착각이었구나. 난 말 안걸고 뚱한 표정으로 있는게 더 실례인불 착각함.


‘긴장’이 된다는 생각은 상상도 못한 나란 인간. 내가 낯선 환경, 낯선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말 거는 것을 짜릿하게 생각한다고 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낯선 내가 말 거는 걸 짜릿하고 고맙다 여길꺼라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니 황당하고 유아적인 사고다. 그렇구나. 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들을 ‘긴장’시킨거구나. 그래서 ‘폭력’인거구나... 난 정말이지.. 죽을때까지 배우자.  



우리 아파트를 나는 좋아하다. 저녁마다 이 붉은 노을 감상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며 따뜻한 눈인사를 건네는 문화를 갖춘 우리 아파트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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