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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Nov 26. 2020

스킨십과 육아

줄탁동시 vs 발묘조장


2020.11.26.목


“스킨십 진도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고 쫄깃한게 영어육아(엄마표영어)예요. 때가 무르익지 않았는데,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몸이 예열되지 않았는데 남자친구의 손이 내 블라우스 안으로 쓰윽 하고 들어오면, 그건 성추행이고 폭행이죠.. 기겁하고 도망가요. 아이가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영어소리 노출된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가 낯설고 어려운데,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너 이 영어책 소리내서 읽어봐” 하고 쓰윽 들어오면 그건 폭행이예요.”


엄마표영어 강연을 하거나 질문을 받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어쩌다보니 19금 답변을 하게 됐는데 나로서도 어쩔수가 없었다. 듣기 좋게 돌려 말하면 알아듣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가 영어라면 기겁을 하고 도망하게 만들고 싶어 그러는 건 아닐테고, ‘내가 지금 애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모르기 때문에 그럴터. 그러니 늙은 언니가 솔직하게 얘기를 해줘야 옳겠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고민들이 많다.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아이한테 ‘오늘부터 엄마랑 영어공부하자’며 영어교재를 들이민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황당할 노릇이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친구가 다가와서 ‘오늘부터 진도 좀 나가야 겠어. 손은 지난주에 잡았으니 이제 어깨는 어떨까?’ 하는 셈.


사람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아이에게 중요한 삶의 습관을 만들어 줄 때도 예열이 필요하고 물밑작업이 필요하다. 아이가 깜짝 놀라지 않게 조심스레 시작해야 한다. 예를들어, 아이가 영어를 모국어처럼 편안하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면, 아이가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조심스레 아이에게 적용해 보는 거다. 한번 적용해보고 아이의 반응을 섬세하게 살폈다가 아이가 놀란 것 같으면 블라우스속에 집어 넣은 손을 얼른 빼고 품위를 지키며 기다려야 한다. 영어는 모국어 자극보다 더 섬세한 적용과 관찰이 필요하다.


영어는 언어이고 정신이고 문화이다. 가장 이상적인 접근은 문학으로 문화로 예술로 접하는 것이고, 이것은 어린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른보다 수월하다. 어린 아이들의 귀는 예민해서 영어소리에 ‘이질감’을 느끼기보다 ‘호기심’을 갖고 듣는다. 이 소리가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호기심을 갖고 귀를 쫑긋 세워 듣는다. 이런 아이의 뇌는 영어 소리를 소음이 아닌 ‘의미의 덩어리소리’로 받아들인다. 어린이 뇌가 가진 또다른 특징은 ‘언어’를 ‘음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에게 영어동요만 날마다 틀어주고 춤추며 놀아도 아이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된다.


head and shoulder knees and toes  노래를 부르면서 손으로는 머리 어깨 무릎 발을 가리키면서 춤추듯 노래 부르는 아이들은 어느새 신체부위 관련 영어단어를, 모국어의 해석이나 간섭없이 ‘그냥’ 흡수한다. 이 ‘그냥’이 엄마표영어의 정수다.  walking walking walking, walking hop hop hop hop hop hop, runing runing runing, runing runing runing, now let’s stop, now let’s stop.  이 노래 하나면 꺄르르 웃으며 땀나게 뛰어 놀다가 주요 영어동사 네 개의 의미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 보자면, 돌쟁이 아기를 안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가니면서 탁자 table, 의자 chiar, 거울 mirror mirror on the wall, 창문 window, 소파 sofa, tv television, 피아노 piano, this is a piano. you can play the piano to make music. 이라고 중얼중얼 언어놀이를 할 수도 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그렇게 생활 속에서 “이미” 익숙해진 단어들을 상기시키기 위해 ‘단어인지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 읽는 ‘놀이’를 해도 좋다. 이 모든 과정들이 아이의 반응을 살피고 아이가 ‘자신감’있게 따라 말하고 반응할 ‘준비’가 되었을 때 섬세하게 들어가줘야 하는 것들이다. 책을 마구 넘기거나 집어 던지면, 그것은 아주 적극적인 거부의사이기 때문에 멈추면 된다. 멈추었다가 다음 때를 기다려 넣고 빼고 하면 된다. 살 날은 많다. 아이의 언어와 생각이 자랄 날은 아직 많으니 서두를 것도 없다. 서두르면 아이는 긴장을 하고 도망가 버린다.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미닭이 밖에서 동시에 ‘적절한 힘을 가해’ 알을 살짝 두드려준다는 의미이다. 제자 혹은 아이의 능력과 타이밍을 정확히 알아채고,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도움을 줌으로서 어린 제자, 어린 자녀를 성장과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도와주되 제 때에 제대로 도와주라는 고사성어인데, 이는 자칫 엄마들의 치맛바람 내지는 헬리콥터맘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나는 다른 사자성어를 강조하고 싶다.



발묘조장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벼를 잡아당겨 자라는 것을 도와준다는 의미의 이 사자성어는 <맹자> <공손추>에 나오는 송나라의 어리석은 농부 이야기이다. 어리석은 한 농부가 모내기를 끝낸 후 다른 집 벼를 보니 크고 무성하게 잘 자랐는데 자신의 벼는 키가 작고 보잘것 없자 급한 마음에 벼순을 잡아 빼 보았다. 그렇게 벼순을 잡아 빼 보니 겉으로 보기에 보니 얼추 키가 크고 잘~ 자란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종일 벼를 잡아 빼느라 고생한 이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에게 자신의 수고를 말하자 식구들이 깜짝 놀라 밭에 달려가았으나 이미 벼는 말라 죽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줄탁동시를 해낼 재간이 있는 부모는 거의 없고, 발묘조장하는 부모는 너무 많다. (생전 아이에게 그림책 한권 읽어주는 노동한 적 없는 엄마가 옆집 아이 벼가 무성하게 잘~자서 한글그림책을 줄줄 읽는 걸 보면 당장 급한 마음이 들어 한글학습지를 시작하며 애를 닥달한다. 아이에게 영어그림책 한 권 읽어준 적 없고 영어소리노출을 한번도 한 적 없는 엄마지만, 어느날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영어 한마디에 호들갑을 떨며 바로 파닉스 교재를 사다 풀리는 꼴이다. 어리석은 농부다.) 때가되면 목을 가누고, 때가 되면 두발로 걷고, 때가 되면 기저기를 떼고, 때가 되면 간판의 한글을 더듬더듬 읽고, 때가 되면 삐뚤빼뚤 글을 쓰는 우리 아이들인데 우리는 참 그 몇개월 앞당기자고, 1년 선행하자고, 그렇게 벼순을 잡아당겨 뽑아놓고만다. 성장할 기회도 박탈된 채 말라 비틀어진 벼를 어쩔꼬.


줄탁동시는 언감생심, 발묘조장만 안해도 육아는 99프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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