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죄가 클까?
2021/4/8/목
우리 어릴 때, 극성맞은 엄마들은 TV를 옷장속에 넣어 잠그고 외출하곤 했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는 노트북을 서랍장에 넣어 잠그고 외출하는 엄마가 있었다. 어떤 엄마는 아예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나와 차안에 두고 모임에 참석하곤 했다. 요즘 엄마들은 가방에 키보드를 꽂고 나온단다. 엄마 외출하는 동안 아들 게임 못하게 가려고. 그 얘기 듣고 빵 터졌다. 시대가 바뀌어도 꺼지지 않는 이 엄마들의 그 극성. 한결같이 실패하는 극성이 반복되는 어리석음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어차피 그 아들, 어떻게 해서든 키보드를 따로 장만해서 엄마 몰래 게임을 할텐데 말이다. 뛰는 엄마 위에 나는 아이. 아들은 엄마라면 이를 갈고,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치를 떤다. 드마라가 따로 없다. 아이를 게임이나 디지털매체로부터 차단하려고 하는 부모들의 노력이 눈물겨우나,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러지 않았던가. 부모들이 반대하니까 더 기를 쓰고 몰래 연애질하기. 갈라 놓으려니 죽음불사. 누군가가 뜯어 말리고 강압적으로 협박하면 '그 짓'을 기필코 하고야 마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사실 그렇게까지 집착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왜 이러지 싶어 나도 미칠 지경이다. 권위자의 그 '협박'이 트리거가 된 것이다. 인간의 이런 간단한 심리만 알아도 요령 있는 부모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아이가 코끼리에 집착할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엄마들 고민상담을 하다보면 간혹, 아이가 수학 문제집 해답지를 베끼는 현장을 목격하고 쥐잡듯이 잡았다는 이야기, 속상해서 눈물이 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정말 속상해서 눈물 날 사람이 누구인가? 나는 되묻고 싶다. 아이는 어쩌다 수학문제 답안지를 베껴야 할 지경이 이르고, 그것을 엄마에게 들켜 비참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되었을까? 그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야 할 중요한 타이밍이다.
세상사람들이 나를 뭐라 손가락질 해도, 내가 그 어떤 한심한 짓을 해도, 달려가 안길 품이 엄마 품이어야 한다. 내 아이가, 설령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 할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죄인을 품어줄 마지막 사람이 엄마여야 한다. 그런 엄마라면, 그런 엄마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아이도 '엄마 눈을 속여' 수학문제집 답지를 베끼거나, 엄마 몰래 키보드를 사서 게임을 함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해치지 않는다.
부모 자식간에 관계가 서로에 대한 존중, 사랑, 믿음으로 단단하다면, 아이는 말한다. "엄마, 이 수학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끝낼 수가 없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해답지를 베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야." "엄마, 엄마가 키보드를 가지고 외출하면, 난 키보드를 내 용돈으로 사서 엄마 몰래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야." 라고 말이다. 그리고 아이 말을 늘 귀담아 새겨듣는 엄마는 '무슨 헛소리야' 하지 않고, 아이의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곰곰히 생각할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디서부터 틀어진 것인가.
이 수학학원은 과연 우리 아이의 능력에 맞는 학원인가? 이 학원의 지나친 숙제량은 합당한 것인가 지나친 것인가? 이 학원의 선행이 우리 아이의 수학적 능력과 맞는 건인가? 그리고 학원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아이의 현재 상황과 고민을 나누고 해결책을 찾는 지력을 발휘할 것이다.
내가 강압적으로 키보드를 뺏는 방식이 옳은 것인가.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인가. 아니면 이참에 아들이랑 게임에 대해서, 게임 시간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다시 대화를 나눠볼까? 점검하게 되니, 이 얼마나 귀한 멈춤인가. 이 얼마나 중요한 신호인가.
그러니 앞으로는 아이의 비행?을 목격하게 되면 이렇게 말을 바꿔보자.
before :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엄마를 속이고 거짓말을 해?)
after : 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 나는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