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워킹맘으로, 엄마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율이는 8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녔다.
첫날을 기억한다. 다른 아이들이 울음바다를 이룰 때 율이는 담담했다.
적응 시간도 필요 없었다. 엄마와 자연스럽게 떨어져서 놀았고, 언제든 엄마가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였다.
그때부터 율이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율아, 엄마 일하고 올게~"
매일 율이가 어린이집 등원하기 전에 하는 아침 하는 인사다.
"엄마 안녕~"
율이도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손을 흔들며 웃는 얼굴로.
37개월이 된 지금까지 이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너무 익숙해진 모습을 볼 때마다 한편으론 짠하다.
이렇게 어린 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니.
나는 학원데스크를 한다.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아이가 안 자고 있기에는 분명히 늦은 시간이다.
하지만 율이는 기다린다.
10시 30분까지 내가 도착하지 않으면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 엄마 안와!"
씻고 나와서 율이와 놀면 어느덧 12시가 된다.
아이에게는 분명 늦은 시간인데도 율이는 잠을 이겨낸다.
눈이 스르르 감겨와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깨어있으려 한다.
"엄마 왔으니까 이제 자자."
그제서야 안심한 듯 잠든다.
가끔 율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잠든 날이 있다.
그럴 땐 새벽에 깬다.
"엄마~"
작은 손으로 내 목을 끌어안는다. 꽉, 놓지 않겠다는 듯이.
그 순간 눈물이 났다. 눈물이 없는 나도 눈물을 쏟아냈다.
미안한데 행복하고, 행복한데 미안했다.
율이가 이렇게 엄마를 기다려주는 게 고맙고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미안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일찍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들게 해주지 못해서.
전업맘 친구들을 만날 때면 괜히 위축된다.
"요즘 뭐 하고 지내?" "애랑 놀아주고, 키카도 데려가고..."
나는 대답한다. "나는 일하느라... 주말에만 시간 내서..."
언제나 뒤따라오는 건 "미안하다"는 말이다.
"엄마 일해?" 궁금해서 묻는다.
"응, 엄마 일해."
"엄마 좋아!"
그 한 마디에 위로받는다.
율이에게 일하는 엄마는 부족한 엄마가 아니라 그냥 엄마다.
매일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일 끝나고 와서라도 율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려 했고, 주말에는 더 많이 놀아주려 했다.
하지만 율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율이에게는 율이만의 시간표가 있다.
아침에는 아빠와, 낮에는 어린이집 친구들과, 밤에는 엄마와.
각각의 시간이 모두 소중하고 모두 필요한 시간이다.
엄마가 없는 시간도 율이에게는 성장의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율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자립심이 강하다.
혼자서도 잘 놀고, 새로운 환경에도 금세 적응하고, 기다릴 줄도 안다.
어쩌면 워킹맘의 아이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기른 능력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율이에게서 배운다. 기다림의 의미를, 사랑의 다양한 표현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율이는 나에게서 배운다. 엄마도 자신의 일이 있다는 것을, 기다리면 돌아온다는 것을,
사랑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는 것을.
"다른 엄마들처럼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런 말을 했을 때 율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마 왜 ?"
그 순간 깨달았다. 미안해하는 건 나뿐이라는 걸.
율이는 지금의 엄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자. 율이에게 충분한 엄마가 되자.
매일 12시까지 기다려주는 아이에게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을 표현하자.
일하는 엄마의 모습도 율이에게는 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믿어보자.
오늘도 나는 말한다. "율아, 엄마 일하고 올게~"
율이도 대답한다. "엄마 안녕~"
이 대화가 더 이상 미안하지 않다. 우리만의 사랑의 표현이니까.
밤 늦게 돌아와서 율이가 목을 끌어안을 때 이제는 미안함보다 감사함을 먼저 느낀다.
이렇게 사랑해주는 아이가 있어서, 이렇게 기다려주는 마음이 있어서.
완벽하지 않은 엄마지만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걸 율이가 매일 증명해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정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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