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이랑 첫 포스팅 여행

by 서담

블로그 이름을 정하고, 첫 포스팅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다음 주말.


목적지는 거창 창포원이었다.


엄마가 "이번 주면 꽃 만발일 거다"라고 추천해준 곳이었다. 사실 어디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율이랑 주말마다 나가던 우리였으니까.

다만 이번엔 다르게, '사진 좀 찍어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월의 주말, 날씨가 좋았다. 바람도 선선하고, 사람도 많지 않아서 그냥 걷기 딱 좋은 날이었다.

율이를 웨건에 앉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율이가 너무 조용했다. 뭐 하나 싶어서 돌아보니, 한쪽 다리를 올리고 누워 있었다.

그 포즈가 완전 내 자세라서 웃음이 나왔다. 세상 편해 보이는 율이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 이런 걸 찍어야 하나?'


블로그에 올릴 사진. 예쁜 풍경 앞에서 웃고 있는 아이.

그런 걸 상상했는데, 지금 율이는 웨건에 누워 있는걸 찍었다. 나중에 보면 웃길 것 같아서.


잠시 후, 율이는 웨건에서 내려 한참 뛰어다녔다. 고양이 인형탈을 보고는 가까이 갔다가 도망치고, 다시 돌아보고, 또 도망치고. 그 모습을 보면서 또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이게 블로그에 올릴 만한 사진인지 생각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담는게 나도 신이 났기 때문이다.


창포원은 구역마다 꽃이 달랐다. 걸을 때마다 풍경이 조금씩 바뀌었고, 나는 율이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풍경도 찍고, 율이도 찍고. 근데 찍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이게 맞나?'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했다. 율이 뒷모습, 율이가 뛰어가는 모습, 율이가 꽃밭 앞에 서 있는 모습.

그리고 풍경 몇 장.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풍경'이 조금 더 많았다는 것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디를 갔는지, 뭘 봤는지, 율이가 뭘 했는지. 쓰다 보니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렇게 완성된 첫 포스팅. 발행 버튼을 누르는건 한순간이였다.


'아,몰라 일단 나도 블로그 써보지 머!'


그날 밤, 율이를 재우고 나서 다시 포스팅을 열어봤다.

어색했다. 사진도, 글도.

근데 이상하게 그전의 여행들보다 훨씬 기억에 많이 남았다.

쩔쩔매며 사진을 찍은 나도, 창포원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좋아했던 율이의 모습도.

천방지축인 율이를 쫒아가던 남편의 모습도.


'내가 했구나.'


첫 포스팅은 거창하지 않았고, 완벽하지도 않았다.

그냥 율이랑 다녀온 주말의 어느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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